김석주는 20대를 전후해서 대부분의 사부 작품을 창작하였다. 그는 29 세에 대과에 장원하였는데 작품 가운데 과거 답안인 시권에 해당하는 작 품도 다수 있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김석주가 부 문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이유가 과거(科擧)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 다. 그는 당시 사부(辭賦)의 대가인 신최로부터 이 문체를 전수받았다. 신 최는 김석주의 작품을 직접 보면서 창작할 때 유념해야 할 사항에 대해 지 적해주었다. 가르침은 자(字) ․ 구법(句法)에서부터 편법과 의장(意匠)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이었다. 문장 학습의 일반적인 방법은 고문가의 작품을 읽어 문장을 운영하는 기법과 사고를 단련하는 것이다. 김석주도 부 문학을 공부하면서 역대 대 가의 글을 섭렵하였다. 이에 더하여 그는 모범이 될 만한 작품을 모의하여 직접 창작함으로써 실력을 키웠다. 이러한 사실은 동료와 함께 스승을 모 시고 별업(別業)을 했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단순히 전범을 모방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창신(創新)의 경지에 이르려고 노력하였 으며, 이로써 당시의 진부한 문풍에서 벗어나 옛 작가의 수준 높은 차원을 회복하려 하였다. 김석주는 다양한 소재에서 부 창작의 실마리를 얻었기 도 하였다. 그는 부뿐만 아니라 다른 문체에서도 모범이 될 만한 작품을 선정하여 그것을 부의 문체로 바꾸어 표현하였다. 그는 마치 책문 과장에 서 책제를 축조하고 전고를 장황하게 훈고하듯이 문장을 전개하여 우월의 식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김석주는 문부를 통해 과거에서 요구되는 고부의 단련을 돕는 한편, 이 과정을 통해 문장력을 향상하였으며 부의 문예적 가 치를 발현하였다. 약관이라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형식미와 수사를 중시하 는 부에 정통한 김석주는 여타의 문장력이 요구되는 과장(科場)에서도 유 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고, 이것은 문과 장원의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