滄海 文尙海(1765-1835)는 18세기 말 19세기 초 진주 인근에 살았던 남명 연원가의 한 사람이다. 이 시기 경상우도 지역의 학자들이 인조반정 이후 出仕 하지 않고 지방에 퇴처하여 학문연구와 修身에 치중하여 살았던 것처럼, 창해 또한 재야지식인으로서의 전형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일생 출사하지 않고 향리에서 不斷한 수양자세로 일관하였는데, 이러한 삶의 자세는 그의 문 학작품 속에 고스란히 표출되어 있다. ..창해집..에는 그 분량이 많지는 않으나 이 시기 경상우도 지역의 여느 지식 인의 문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문체의 글이 실려 있다. 漢詩의 경우 조선조 지식인에게 통용되던 오언시와 칠언시 외에도 六言詩가 6수나 들어 있 으며, 그 외 記·說·詞·傳·訓·銘·歌·賦 등 다양한 문체의 작품이 골고루 실려 있다. 그 내용에 있어서는 재야지식인으로서의 ‘끊임없는 수양하기’가 일관되게 나타 난다. 곧 유사한 내용을 읊어내더라도 다양한 형식으로 표출해 낸 경우인데, 이 는 창해가 그만큼 풍부한 문학적 소양과 다양한 창작활동 욕구를 지녔음을 의 미한다. 문학작품 가운데 특히 시를 중심으로 효용론적 측면에서 孝行詩·紀行詩·愛民 詩·修養詩·隱居詩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는데, 그 속에 드러난 창해의 문학적 志 趣는 재야지식인으로서 삶 그 자체였다고 하겠다. 그는 출사하여 자신의 이상 을 펼치지는 못하였으나 조선조 지식인으로서의 處世, 士意識, 愛民精神 등을 다양한 문체 형식을 빌어 작품 속에 표현해 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