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의 다케시마 10포인트-제6포인트 제7항은 大韓帝國勅令第41号가 제정·반포되기 이전과 이후에 韓國의 獨島에 대한 실효적 지배가 확립되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에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國際法에 위반하는 주장이다. 첫째로, 역사적 사실의 관점에서 보면, 朝鮮은 정기적으로 관리를 파견하고 감시해왔다. 즉, 김인우를 울릉도 관찰사로 1425년에 임명·파견한 사실, 이규원을 울릉도 관찰사로 1880년에 임명·파견한 사실, 김옥균을 동남제도 관찰사로 1883년에 임명한 사실 등을 둘 수 있다. 둘째로, 범국제법의 관점에서 보면, 원거리·무인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는 근거리·유인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에 비해 용이하다.
또한 屬島의 법적 지위는 主島의 법적지위와 동일하다. 따라서 鬱陵島에 대한 실효적 지배는 獨島에 대한 실효적 지배로 인정된다.
1145년 고려왕조가 발간한 삼국사기에 따르면 독도는 521년부터 한국영토였다. 한국은 반만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1910년 한국 국민의지와 상관없이 일본제국 주의 무력에 의해서 합방되어 1945년 해방될 때까지 비참한 식민지 통치하에 있었다. 독도(리앙코 섬, 마쓰시마)를 합병하려는 일본내각의 비밀결정은 1697-99사이에 한국과 전 일본 정부 사이의 협약에 근거하여 “다케시마는 일본과 무관하다.”고 진술하고 있는 태 정관문서(1877. 3. 29)의 결정을 부정함으로써 국제법의 금반언의 원칙을 파기하는 것이다. “국가는 한 공동체가 정부의 구성, 영토의 확정, 그리고 자국의 재산과 국민을 타국의 지 배에서 배제된 영토에서 통치할 수 있는 권위를 획득했을 때 존재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1948년 8월 15일 한국사회는 독도를 포함하여 한국 땅에 대한민국을 수립했다. 독도는 포츠담 선언에 따라 SCAPIN 제 677호(1946년 1월 29일)에 의해서 일본으로부터 합법적으로 배제되었으며 일본으로부터 정치․행정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었다. 전술한 SCAPIN 제 677호(1946년 1월 29일)의 조항은 발효된 후 개정되거나 취소된 적이 결코 없었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총회는 압도적인 다수로 “한국국민은 국민정부의 수립과 그에 따른 자유와 민주 선거를 통해서 오랫동안 추구했던 자유와 독립을 획득할 목적”임을 가결했다. 따라서 한국사회는 1948년 8월 15일 1952년 일본정부가 자주권을 완전히 회복하기 4년 전에 일본과 샌프란시스코(1951년 9월 8일) 평화 조약에 따라 전술한 자유와 민주 선거권을 획득했다. 전술한 SCAPIN 제 677호(1946년 1월 29일)의 조항인 “일본의 정의에서 리앙코 섬(다케 시마)의 배제”는 평화 조약 제 19항(d)과 유엔헌장 제 107항에 포함된다는 것은 자기설명 이다. 그러므로 독도에 관한 일본의 주장은 전술한 조항을 위배하는 것이며 2차 세계대전 후 평화조약에 명시된 국제 평화와 안전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일본은 독도에 관한 주장을 그만둘 때이며 그것은 예의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독도주장 포기는 1910년 일본의 강점에 의해서 악화된 한국국민의 상처에 대한 “화해의 상징”이며 정의를 위한 것이다. 이는 또한 1905년 일본이 한국에 속한 독도를 탈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감스럽게도 일본외무성은 한국 섬, 독도를 영유하기 위하여 소위 “다 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개의 포인트”를 발간하였다. 나는 한국인으로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주장은 여기에 첨부한 “다케시마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개의 포인트”처럼 불법 이며 비논리적인 점을 반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