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볼테르의 캉디드에서 ‘낙관주의’라는 이름을 통해 냉소적으로 풍자된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재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볼테르의 낙관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가능한 최선의 세계 또는 최선의 가능 세계라는 정식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라이프니츠의 변신론에서 나타나는 이 정식에 대한 오해는 볼테르가 신의 지적, 논리적 선택을 인간의 윤리에 영향을 주는 선악의 문제로 곧장 등치한 결과이다. 라이프니츠에게 있어서 세계는 단순히 우리를 둘러싼 외부 환경만을 의미하지 않고, 모든 인간 개체들 스스로도 각자 하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신의 지적인 선택과 결정은 가능한 모든 상황, 관계를 아우르는 법칙에 관한 것이기에 신은 우리의 고통에 자의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신이 직접 개입해서 자연 재해, 전쟁 등 세계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적인 기대일 뿐이다. 변신론에서 신에 의해 허용된 악의 본질은 결핍이며, 라이프니츠의 처방은 그러한 결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제시된다. 최선의 논리는 이 세계가 윤리적 악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가장 좋은 것이라는 방관적인 윤리적 귀결과는 거리가 멀다.
이 논문은 1916년 발표된 「라이프니츠 모나드론의 전개」에 나타난 라 이프니츠의 모나드론에 대한 T. S. 엘리엇의 계보학적 탐구의 중요성을 점검하는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에 대한 순수하게 논리적인 러 셀의 접근에 비판적인 엘리엇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론이 출현하는 이 론적, 그리고, 특별히, 신학적 배경에 예리하게 주목한다. 엘리엇은 라이 프니츠의 모나드 개념에 대한 사상적 시원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을 손꼽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과 근대 원자론 이론을 통합하고 있는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는 비물질적이고, 분리 불가능하며, 영원하다. 하지만, 모나드론의 바탕에 자리하고 있는 라이프니츠의 과학 적 지향과 신학적 지향 사이에는 해결될 수 없는 균열이 존재하며, 영 혼 불멸에 대한 기독교적인 믿음을 회복하려는 그의 “야심에 찬” 기획 은 궁극적으로 실패했다고 엘리엇은 결론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