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역사적 평화교회’로 불리는 메노나이트교회의 평화주의 전통에 대한 연구로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에 주목하였다. 첫째, 16세기 종 교개혁과 재세례파의 형성과정을 논구하고 이런 과정에서 메노나이트 교 회의 생성과 그 신학에 주목하였다. 둘째, 메노나이트교회의 평화주의 전 통을 파악하기 위해 메노나이트교회의 시원이 되는 메노 사이먼스(Menno Simons, 1496-1561)의 생애와 저술을 통해 그의 평화주의 사상의 연원을 추적하였고, 그것이 성경과 초기 기독교의 가르침에 근거하였음을 제시하 였다. 특히 메노 사이먼스는 ‘그리스도를 본받음’(imitatio Christi)를 ‘비폭 력 평화’에 찾았음을 지적하였다. 셋째, 이런 평화주의가 재세례파의 첫 신 앙고백서인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서에서 표명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 신앙고백서의 가르침이 그 이후 어떻게 계승되어 왔던가를 지적하였다. 넷째, 이런 전통을 계승하는 메노나이트 교회의 양심에 근거한 병역거부 에 대해 기술하였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비폭력 평화주의의 단순한 적용이 라는 점을 지적하고, 양심에 의한 병역거부는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있어왔 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 이후 정당정쟁론의 대두, 16세기 아나뱁티스트들 을 통한 탈 콘스탄틴주의와 병역거부에 대해 기술하였다. 또 16세기 이후 메노나이트교회에 의한 평화주의 전통이 어떻게 계승되어 왔는가를 지적함으로 메노나이트교회의 평화주의 전통을 제시하고자 시도하였다. 특히 메노나이트교회가 ‘제자도’로 고양해 왔던 비폭력(non-violence), 반전운동 (anti war movement),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화해(reconciliation), 앙갚지 않음(un-retaliation) 등과 같 은 고상한 가치들은 남북한의 군사적 대결과 위협 하에 있는 오늘의 한국 에 교훈과 자극을 주고 있음을 지적하고, 메노나이트교회의 평화주의는 근 본적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의 방식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MCC)는 1951년에서 1971년까지 한국에서 구제와 교육 사역을 해 왔다.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는 1920년 조직된 이후 전 세계의 분쟁지역 사람들을 구제하기 시작하였고,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구제사역을 펼쳐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농업, 물공급, 집 짓기, 보건, 직업 창조, 평화 세우기, 교육 등이다. 이런 활동과 함께 그들은 전 세계의 수많은 다양한 기구들을 파트너로 삼아 지원하고 있다. 그들은 ‘메시야의 평화 선교’ 정책에 기초하여, 인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인 모든 차원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다.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는 한국전쟁 중인 1951년부터 한국과 관계를 시작했다. 휴전 직후인 1953년 7월에는 한국대표부를 대구에 설립하고 경산에 농장을 개발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한국 활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 네 가지는, 물자구제 사업, 직업학교, 가족/어린이 지원 프로그램, 전쟁 과부들을 위한 재봉기술 교육 등이다.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의 사역은 제자도에 기초하여 공동체 안에 평화를 세우는 일이었다. 이 사역의 구체적인 모습이 개인과 가정과 마을과 한 국가에 대한 구제와 개발이고, 구제와 개발이 지향하는 바는 평화인 것이다. 이 구제사역은 곧 평화를 주고 나누고 세우는 사역이었다. 구제사역과 평화사역은 서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개념이다. 한국 메노나이트 중앙 위원회는 인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모든 욕구를 포괄하는 선교인 ‘메시야의 평화 선교’에 근거해서 한국전쟁 시기 한국에서 그들의 평화사역을 시작하였다. 진정한 평화는 ‘일용할 양식’과 ‘공동체’가 그 기초이다. 그들은 신앙교육은 하되 교파교육은 시키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를 설립하려는 사람들을 지원했다. 그러나 메노나이트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앞서 들어온 한국의 교회들을 존중했고, 한국교회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묵묵히 감당해 주었다. 그들은 한국교회를 섬겨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