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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검여 유희강은 광복 이후 한국 서단에서 많은 영향력이 있었던 서예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가학과 신학문 교육기관 및 중국 유학 등을 통해 서예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또한 소탈하고 겸허한 인품으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였고, 서예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걸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교유하며 학문 세계를 추구하였다. 그는 한학자ㆍ서지학자ㆍ시인ㆍ소설가ㆍ미술평론가ㆍ화가ㆍ전각가ㆍ미술애호가 등 넓은 인맥을 통해 학문ㆍ문화ㆍ예술 등에 대한 자외공부를 넓혀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서예는 단순한 서사 기능을 넘어서 ‘문자향ㆍ서권기’를 갖추는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이러한 검여의 교유에 대해 서예ㆍ한학ㆍ문학ㆍ 회화 등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검여의 사숙에 대해서는 첩학서예와 비학서예를 나누어 분석하였다. 그는 첩학서예를 연마하면서 비학서예를 더욱 추구하였다. 그의 작품을 보면, 유용ㆍ황정견ㆍ소식ㆍ조지겸ㆍ등석여ㆍ강유위ㆍ포세신ㆍ김정희 등을 흠모하고 사숙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들의 글씨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추구하였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개성 있는 서예 풍격을 형성해 나갈 수 있었다. 교유와 사숙이 검여 서예에 미쳤던 영향을 정리하면, 비첩병용ㆍ법고 창신ㆍ금석기ㆍ혼박웅일ㆍ필법입화ㆍ자외공부ㆍ불굴쇄신 등이다. 검여는 한국 서단에 북위서풍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고, 금석기를 추구하여 김정희의 맥을 이어 나갔으며, 좌수서의 불굴쇄신 정신으로 후학들의 사표가 되는 서예가라 하겠다.
        6,700원
        2.
        2016.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편찬한 진산세고(晉山世 稿)를 보면 이 집안에서 대대로 많은 인물들이 문과에 급제하고 문집이 편찬되 었음이 확인된다. 이를 보면 진주강씨 공목공파가 고려말 조선초의 대표적인 문벌임이 확실하다. 공목공파(恭穆公派) 선조 가운데 문장으로 가장 뛰어난 인물이 강희맹인데, 그가 1483년 2월 18일에 세상을 떠나자, 성종이 곧바로 그의 문집을 편찬하라 고 명하였다. 『사숙재집(私淑齋集)』을 어명으로 편찬케 한 것만 보아도 조정에 서 그의 문장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조선왕조는 사대교린(事大交隣)을 외교의 근간으로 하였으므로, 과거시험을 통해 사대교린에 필요한 문장가를 선발하였다. 강희맹의 활동과 문학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많은 시를 지었고, 문화교류에 앞장섰다는 점이다. 중국 문인들이나 조선 문인들이 그의 조천시(朝天詩)에 많이 차운하여 문화교류의 전범을 보였다. 더군다나 대를 이어서 중국에 다녀오고 그 체험을 기록으로 많이 남긴 것은 다른 집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진주 강 씨 문중의 특징이기도 하다. 조선 초기의 문벌인 공목공파 문인들의 한시가 한 시의 고향인 중국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던 것이다. 진주강씨 문인들이 북경에 갈 때에는 선조의 조천록이나 연행록을 가지고 가서 참조했으며, 선조의 시에 차운하여 시를 지었다. 선조가 길을 안내하며 함께 시를 주고받는 동반자가 된 셈이다. 강희맹은 형 강희안 덕분에 시를 짓기 전부 터 명나라 문인들에게 인정받았으며, 사행에도 성공하여 상을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농사와 원예에 관심이 깊었으므로, 중국에서 연꽃 씨와 버드나무 가지를 들여와 조선에 퍼뜨렸다. 오백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조천 활동의 자취가 남아 있는 것이다. 진주강씨 종친회에서 선조들의 조천록과 연행록 10여종을 모두 번역하여 진주강씨 연행록집성을 출판하면 학계의 연구에 도움이 될 뿐만 아 니라, 국제적으로 활동했던 진주강씨 선조들의 문장과 업적이 널리 선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