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의 목적은 무산 조오현(1932~2018)의 선적 사유와 그 시적 형상화의 의미를 살펴보는 데 있다. 그는 선승이며 시조시인으로, 1968 년 『시조문학』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으며, 신흥사 주지와 회주, 만해 사상실천선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아울러 『심우도』, 『절간이야기』 등 의 시집과 『산에 사는 날에』, 『선문선답』, 『죽는 법을 모르는데 사는 법을 어찌 알랴』 등의 산문집을 남겼으며, ‘공초문학상’과 ‘정지용문학 상’ 등을 수상했다.
무산의 시세계가 지향하고 있는 특징은 선적 사유의 형상화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시에서 보여주는 구도와 깨달음의 성찰은 무념, 무상, 무욕의 탈속한 자연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아울러 그는 이러한 시 창작과정에 있어 생겨나는 갈등과 의문에 대해 선문답과 같은 물음으로 그에 대한 답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묻기도 하고, 또한 다양한 사람들 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를 제시한다. 가령, 「아지랑이」, 「적멸을 위하여」, 「산창을 열면」, 「무산심우도」, 「무 자화 부처」, 「일색변, 「무설설」, 「아득한 성자」 등에서 보여주는 역설의 언어는 그 자체가 선의 화두이면서 언어적 해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수행자로서 깨달음을 얻기 위한 자아성찰과 고뇌의 심경을 표출한 무산의 시 세계의 특징은 모든 분별의 경계선을 허물어가는 원 융의 사유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량 분별에 의한 수많은 경계선 들을 해체하면서 궁극적으로 차별과 대립을 뛰어 넘은 원융의 세계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도를 향한 시적 노정에 성/속, 스님/속 인, 산중의 일/ 세상일 들을 두루 담아내려는 끊임없는 시도를 보여주 는 그의 시적 세계에는 수행자로서의 치열한 구도와 깨달음, 그리고 상 호연기의 생명존중과 자비실천의 모습이 선명히 형상화되어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조선 후기의 백암 성총(栢庵性聰, 1631~1700)의 사상 특징과 그것이 그의 시문학 세계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데 있다. 백암 성총은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0)-취미 수초(翠微守初, 1590~1668)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하고 있다. 『화엄경소초』, 『금강경간정기』, 『기신론필 삭기』등을 간행하여 교학발전에 크게 공헌하기도 하였던 성총은 선과 교학을 두루 섭렵한 종장으로 화엄, 천태, 정토 등 불교 전반에 해박하였으며, 송광사, 징광사, 쌍계사 등지에서 강석을 펴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또한 성총은 외전에도 능통했고 시문을 잘 지어 당시의 명사들과 잦은 교유를 하였다. 김문곡, 정동명, 남호곡. 오서파, 최동강 등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1686년(56세)에 정토신앙 지침서인 『정토보서』를 펴내기도 하였던 성총은 말년에는 정토신앙에 더욱 깊이 침잠하여 『백암정토찬』을 펴냈다. 이는 『정토보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성총신의 구도와 깨달음의 세계를 잘 표현한 것으로써, 그의 정토사상과 시적 상상력과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는 압권의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백암 성총의 사상의 특징과 그것이 그의 시문학 세계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다시 말해 백암 성총의 핵심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정토사상과 그것의 시적 형상화를 『백암정토찬』을 중심으로 1) 구도와 깨달음의 시, 2) 극락정토 예찬의 시, 3) 아미타불 신심의 시 세계를 조명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본 논문의 목적은 청매인오(1548~1623)의 선사상의 특징과 그 시적 표현을 살펴보는데 있다. 청매선사는 청허 휴정의 걸출한 제자로 임진 왜란 때에는 의승장으로 출전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그 후 지리산의 여러 수행처에서 ‘청매문파’를 열어 선풍을 크게 떨쳤다. 선교(禪敎)와 유교, 그리고 도교에도 해박한 학식을 지녔던 그는 청빈한 삶을 살았다. 특히, 그는 조사의 공안법문을 노래하고 성성적적한 수행과 깨달음을 노래한『청매집』을 남겼다. 여기에는 송고시 148편과 선심을 담아낸 163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러한 시편들은 마음이 모든 것의 근본임을 인식하고, 지관(止觀)수행을 통해 자성(自性)을 찾고자 한 청매선사의 올곧은 수행 삶의 흔적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청매선사의 출가와 구도, 깨달음과 자연 교감, 조사공안 법문과 수행자들에 대한 경책과 교화, 그리고 임진왜란과 관련한 시편들을 통해 그의 선심이 어떻게 시문학에 투영되어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편양 언기(1581∼1644)의 선사상 특징과 그것이 구도와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 깨달음을 증득한 후의 보림(保任), 자연교감과 방외(方外)의 생활과 대중교화에 있어 어떻게 투영, 시적 형상화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데 있다.
언기는 교와 선을 별문(別門)으로 보지 않는 서산 휴정(西山休靜)의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 언기의 선사상의 핵심은, 선은 교외별전의 경절문이며, 선교일치의 사상을 보이면서 선을 교보다 우위에 둔 점, 깨달음에 이르는 문을 경절문, 원돈문, 염불문 등의 삼문으로 구분한 점, 그리고 그 삼문은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자성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궁극적인 경지는 같다는 것이다.
언기는 서산의 ‘4대 문파’ 가운데 최대 계파로 조선 후기 불교교단의 대중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자신의 득도와 참선 수행에만 전념하지 않고, 10여 년간 평양성 근처에서 양을 치고 걸인들을 보살피는 등 중생의 아픔을 함께 나눈 철저한 보살행을 실천했다. 그의 「편양당집」에 수록된 시들은 구도의 과정과 깨달음을 노래한 시, 산승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자연과의 감회를 읊은 시, 찾아오는 속인들을 향해 읊은 시, 도반의 선승들에게 준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이러한 시문은 치열한 구도와 깨달음을 향 한 수행과 대중교화에 진력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는 선심(禪心)의 시심화(詩心化)가 잘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