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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연구는 한국 교회의 1세대 선교학자들 중에 이광순 교수에 대한 연구이다. 전재옥, 전호진, 강승삼, 이태웅 등과 더불어 이광순 교수는 한국 선교학자의 1세대에 속한다. 그는 1986년 풀러에서 박사 학위 취득 후 장신대에서 가르쳤으며 많은 예장 통합 선교사 훈련에 참여했다. 이 연구는 이광순 박사의 선교학과 예장 통합 선교사들과 한국 교회에 대한 공헌을 이해하고자 했다. 이것을 위해 본인은 이 박사의 연구논문들과 저서들과 박사 학위 논문을 참고했다. 본인은 우선 그 이전의 두 명의 장신대 선교 관련 교수들에 대해 간략히 고찰한 뒤에 그의 생애와 사역을 정리했다. 그 뒤에 본인은 그의 연구 주제들을 여섯 개의 주제와 몇 개의 작은 주제들로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본인은 이광순 박사의 사역에 대해 논의했다. 이광순 박사와 그의 연구가 영어권에서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생활과 사역을 보다 자세히 살펴 보았다. 이 연구는 이신형의 선행 연구보다 광범위하게 이광순 박사에 대해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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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연구는 1959-1969년 사이에 네 개의 장로교단(고신, 기장, 통합, 합 동) 사이에서 일어난 5차례의 연합운동에 대해 발생과정, 논쟁점들, 실패의 이유에 대해 고찰했다. ⑴ 제1차 연동-승동(훗날 통합-합동) 재연합운동 (1959-60)은 중립파와 선교사들의 중재로 시작되었다. 분열의 상처가 채 아물기 전이었고, ICCC자금 지원에 의존하여 승동측이 연동측에 신학교재 산을 되찾으려는 소송을 준비하는 중이었기에 화해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1960년 2월 조직된 통합측은 WCC탈퇴를 결정했다. ⑵ 기장-통합 귀일운 동(1961)은 한국신학대학 출신의 목회자들의 인적 관계로 인해 시작되었 다. 강단교류를 통해 우정회복과 신앙교류를 한다는 소박한 운동이었으나 통합측 교권의 반대로 중단되었다. ⑶ 제2차 통합-합동 재연합운동 (1961-63)은 고신-승동의 합동총회(1961)이후 희년총회(1962)에 일치를 기 대하는 평신도들의 열기에 힘입어 시작되었다. 실패의 원인은 NCC 탈퇴에 대한 이견 때문이고, 합동으로부터 성경장로교회(1961)와 호헌교단(1962) 이 분립했고, 고신이 환원(1963)함으로써 연합운동의 동력이 떨어졌다. ⑷ “합동촉진론”(1964)은 NCC를 탈퇴하고 합동과 일치하자는 주장으로 경북 지역의 통합측 노회 안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통합측 리더들은 무례한 유인물을 배포한 합동지도부들의 진실성을 의심해서 이 운동을 규제했다. “장로교연맹체론”(1964-65)은 기장-통합 소장파들로부터 시작되었고 교단 연합이 어려우니 연맹을 구성하자고 했다. 합동과 고신은 이에 응하지 않 았다. ⑸ 3차 통합-합동 재연합운동(1968)은 1967년에 합동교단에서 내부 교권갈등으로 지방주의(Synod제도 추진)가 강화되자 정치적 해결책으로 시작되었다. 합동측은 보수-진보 진영 논리를 강화해서 통합측의 신학적 내부갈등을 유도했다. 하지만 통합측 내부분열이 심해지자 통합총회는 1968년 9월 재연합운동을 중단시켰고, 이듬해 압도적인 다수표로 WCC복 귀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