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무속 연구에서 무당으로 입무 전 반드시 겪는 고통, 즉 신병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사례로 조사되어 있다. 현재 입무 전 겪는 병고에 대한 명칭은 신병으로 통일된 지 오래다. 하지만 무병이란 말은 사라지고 신병으로만 부르 는 데서 오는 부작용은 만만찮다. 연구자들이 무병과 신병을 구분해 줘야 무 속현장에서 겪는 많은 시행착오를 시정할 수 있다. 즉 무분별한 내림굿으로 물의를 초래하는 사회적 갈등을 잠재우고 무당에 대한 신뢰를 높여주는 것 역시 연구자들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무병과 신병을 반드시 구분하여야 하며, 무병의 고통 은 보통 사람에서 신령을 주재하는 무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학습 과정이며, 이를 통해서 병자를 고칠 수 있고, 저승과 이승을 넘나들 수 있는 특수한 힘 을 부여받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무병은 무당이 되기 위한 전조현상이다. 하지만 신병은 빙의된 귀신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단순한 귀신병이다. 또 무당의 접신 양상을 보통 퍼제션(possession), 엑스터시(ecstasy), 트랜스 (trans) 현상으로 구분한다. 그러나 학계는 한국 무당의 접신 양상에 대한 합의에 이루지 못하였다. 한국 무당의 접신 양상은 신들림, 즉 퍼제션(possession) 현 상이 대표적이며, 간혹 신을 처음 접할 때 엑스터시(ecstasy) 현상을 경험한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랜스(trans) 현상은 신들림과 탈혼 현상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밝힌다. 물론 기존 주장과 달리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면서 무당의 접신현상을 밝혀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내림굿 전에 하는 걸립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학계의 통설은 내림 전 걸립은 쇠걸립으로 놋쇠를 얻어 무구를 만들기 위한 행위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쇠걸립을 했다는 기록은 제주도 심방의 ‘쇠동녕’으로, 명두를 만들 기 위한 쇠걸립 외 강신무들은 쇠걸립을 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 강신무의 걸립은 새 무당이 탄생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마을을 다니면서 영 험한 공수를 내려 쌀이나 돈을 시주받았다고 한다. 이때 받은 쌀이나 금전은 내림굿에 사용할 떡을 하고 돈은 내림굿 경비를 충당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단지 김금화만 쇠걸립 후 쌀걸립을 다시 다녔다고 말한다. 하지만 강신무의 걸립은 쌀과 금전을 시주받는 것 외,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분석한다. 이 글은 무당이 되기 전 겪는 무병에 대한 정의를 정리하고, 무당의 접신 양상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 내림굿 전 다니는 걸립의 형태와 양상을 근거로 걸립에 대한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무병의 의미와 접신의 양 상 그리고 걸립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