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유적은 통일신라 장보고의 해상유적으로 알려져 있고 장기간에 걸친 발굴조사를 거 쳐 당시에 축조된 토성이 보고되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를 검토한 결과 828년 청해진 설치 에 따라 축조되었다고 보고된 장도토성(청해진성)의 기단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대부분 10~12세기경으로 편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도토성의 축조 시기는 당연히 출토유물이 폐기되고 난 다음 시기인 12세기 이후로 판단되고 9세기 전반에 폐지되는 청해진유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즉 장도토성은 토성 기단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보아 축조시기가 12세기 이전으로 소급 될 수 없고 2~3차에 걸친 수측흔과 상감청자도 출토되고 있는 고고학적 상황도 장보고 관 련 유적이 될 수 없다. 또한 장도토성은 내외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4기의 방형 치(雉)가 부 가되어 있는 점, 섬 앞으로 원목렬을 설치하고 우물을 보호하는 시설을 설치한 것은 항몽시 기 항파두성의 구조와도 상당히 부합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항몽 시기에 송징장군이 완도를 거점으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전까지는 마을마다 송징장군의 제사를 지냈는데 장군을 주벽에 모신 사당이 장도에 남아 있었던 것, 장도 인근 에 위치한 법화사에 사역을 두르는 담장이 축조된 배경과 장도토성의 축조시기와 구조 등을 감안하면 고려의 항몽유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장도토성 내부에는 장도토성 축조 이전에 이미 건물지와 수혈, 매납유구 등이 조성 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도기를 주종으로 하는 다양한 제사유물이 출토되었고 그 시기 는 9세기 후반 이후가 중심시기가 된다. 이것은 장도가 삼국사기 제사조에 기록된 중사 처 중의 하나로 기록된 조음도일 가능성이 높고 고려 전기까지 계속하여 제사가 이루어진 것으 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장도는 통일신라시대의 중사처였다가 고려의 대몽항쟁기에는 섬 을 둘러 토성이 축조된 것으로 장도에는 성격을 달리하는 두 시기의 유적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국내 방연석 광산의 방연석에 대한 납동위원소비 분석 자료를 응용하여 청해진에서 출토되는 청동기에 사용된 납 원료의 산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또한 부산물로 산출되는 미량원소의 종류와 함량이 산지추정의 보조지표로 이용할 수 있는지의 가능성도 검토하고자 하였다. 장도 청해진에서 출토된 청동기의 납동위원소비를 기존에 일본에서 사용하던 동북아시아 납동위원소비 분포도에 적용하면, 청해진 출토 청동기는 중국산 납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를 한반도 납동위원소비 분포도에 적용하면 대상시료 대부분이 한반도 남부 옥천변성대와 영남육괴 지역의 방연석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미량원소 중에서 은(Ag)이나 안티몬(Sb)의 함량은 동일 지역(zone)의 납동위원소비가 비슷한 서로 다른 광상을 분리하는데 유용한 보조지표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