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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영동지방은 삼국시대 때 신라와 고구려 사이에 분쟁이 자주 발생하였던 지역으로 동해안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동해안 지역의 고고학적 기록에 의하면, 영동지방은 5세기까지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로 남아 있다가, 6세기에 들어 완전히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는 신라가 바다 건너 우산국의 복속을 추진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2012년은 신라의 이사부가 한반도 동해안 지역에서 출항하여 우산국을 한반도의 역사로 편입한지 1,500년이 되는 해로, 역사서에 기록된 문자의 기록을 학술적이고 과학적인 접근 방법으로 그 실체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하기 위해 출항하였던 출항지를 분석하기 위해 강릉시, 동해시, 삼척시, 울진군의 과거 및 현재의 항포구를 대상으로 자연환경 및 GIS 입지분석을 통해 객관적인 출항지를 분석하였다.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출항지의 정확한 항만입지를 분석하기 위해 기존 연구자들의 해수면 복원 자료를 중심으로 6세기(512년)경의 해수면을 복원하였다. 연구자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복원결과 6세기경의 해수면은 현재의 해수면보다 약 1.1m 높았던 것으로 분석되었다. 둘째, GIS를 이용한 출항지 입지분석을 위해 삼척 지역의 일반적인 지질·지형 관련 자연환경을 조사하였다. 또한 한국수산지 및 고문헌에 나타난 과거 군사관련 진(津)과 포구가 입지하였던 곳을 지도화하였으며, 최근의 항포구 등도 지도화하여 GIS 분석의 기초자료로 이용하였다. 특히, 항포구의 자연환경 분석을 통해 항 포구의 자연환경 특색을 분석하였다. 셋째, 출항지가 위치할 수 있는 입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GIS기법을 이용하여 울릉도와 동해안의 실거리 최단거리 및 동위도상 최단거리 분석을 실시 하고 버퍼링 분석 및 중첩분석, 지형경사분석을 하였다. 분석결과 덕산항, 궁촌항, 장호항, 임원항, 삼척항, 초곡항, 신남항, 호산항, 작진항, 노곡항, 비화항, 고포항, 광진항, 후진항, 월천항, 용화항, 갈남항 등 총 17개소의 항구가 최단거리 및 동위 도상 최단거리 분석에 의한 입지요인을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문헌에 기록된 진·포구는 정라진, 오분진, 후진, 광진, 고포, 노곡진, 월천진, 재산, 부호 진, 작진, 임원진, 덕산진, 부남, 대진, 신남진, 장호진, 갈산진, 초곡진, 원평, 추천 진, 분토진 등 총 21개소의 진·포구가 최단거리 및 동위도상 최단거리 분석에 의한 입지요인을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항포구를 대상으로 경사분 석한 결과, 정라진, 오분진, 고포, 월천진, 임원진, 부남, 신남진, 장호진, 갈산진, 원평, 분토진 등 11개소가 경사 5°미만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배후지의 면적이 100ha 이상인 곳은 부남, 월천진, 정라진, 오분진, 원평 등 5개 소였으며, 100ha에 육박하는 곳은 임원진과 고포 2개소로 분석되었다. 넷째, GIS기법에 의해 분석되어진 출항지 후보지와 강릉지역에 위치한 안인진에 대한 3차원 정보 분석을 통하여 가시권 분석을 실시하였다. 3차원 정보 분석을 통한 가시권 분석은 고도자료를 이용하였으며, 이를 위해 후보지의 배후산지 중 가장 높은 봉우리를 이용하여 분석하였다. 분석에 사용된 봉우리는 안인진 월대산 (해발고도 68m), 정라진 봉황산(148.8m), 오분진 고산성(90m), 고포 태봉산(150m), 부남 무명봉(163m), 월천진 무명봉(160.3m), 원평 무명봉(99m), 임원진 무명봉 (141.1m) 등 8개소이다. 분석결과 안인진의 월대산을 제외하고 모든 지역에서 울릉도의 육안관측이 산술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사부 출항지 규명을 위한 종합분석결과, 울릉도의 육안관측이 가 능하고, 경사가 완만한 넓은 배후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울릉도와의 거리가 가까운 곳은 거의 대부분 삼척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출항지는 이러한 요인들을 포함하여 대규모 군진이나 행정관청이 위치한 지역적 요인과 피항 및 방어에 유리한 지형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조선시대 수군진이 위치하였던 정라·오분진 지역이 6세기 울릉도를 복속하기 위 해 이사부 장군이 출항했을 가능성이 높은 출항지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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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신라장군 이사부의 동해안 출항지가 새로운 논점으로 제기되면서, 지금까지 ‘강릉출항설’과 ‘삼척출항설’이 대두되고 있다. 본 연구는 우산국을 복속한 이사부의 동해안 출항지에 대한 실체적 규명의 필요성이 시급히 요구됨에 따라, 이에 대한 해결을 모색하는 방안의 일환으로서 강원 영동지방의 강릉․동해․삼척지역으로 공간적 범위를 제한하여 역사고고유적을 바탕으로 접근해 보았다. ‘강릉출항설’에 대한 검토 결과, 안목항(지금의 강릉항)은 남대천 하구의 바깥쪽에 위치하고 암석해안으로 구성된 규모가 매우 작은 포구이기 때문에 대규모 兵 船의 출입에는 매우 부적합한 장소로 판단된다. 또한 남대천 하류역의 일대는 주변이 모두 사구지대와 저습지로 형성된 관계로 당시 하천의 정확한 고환경을 알 수 없으나 그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생각된다. ‘삼척출항설’에 대한 검토 결과, 오십천 하구와 하구 남쪽에 접한 오화리산성의 구조와 지리적 입지, 산성내 출토유물을 고려하면 그 가능성에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진다. 대체로 삼국시대 5C ~ 7C대의 신라고분들이 군집을 이루고, 據點城 내지 治所 城이 함께 존재하고 있는 지역은 영동지방에서 비교적 큰 하천에 속하는 강릉 연곡천ㆍ남대천ㆍ군선천ㆍ주수천 일대, 동해 전천 일대, 삼척 오십천ㆍ마읍천ㆍ가곡천 (호산천 포함) 일대로 파악된다. 신라가 동해안 지역 중에서 가장 먼저 삼척에 군사적 전진기기의 성격을 띠는 州를 설치한 것은 이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에 주목하여, 동해 연안해로(해상교통로)를 독점적으로 확보 ․ 지배하여 동해안 영동지방의 진출과 북방교역의 전진기지로서 最適地가 바로 삼척이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실직지원에서의 말갈세력 격파, 실직원에서의 고구려변장 살해, 실직성의 습격, 니하성 축성 등 일련의 기사를 통해서 泥河가 고구려와 말갈세력의 주요한 삼척 침입루트로 파악되며, 실직성 습격에 따른 니하성의 축조는 실직성(삼척)의 지정학적 중요성, 즉 해상루트와 관련된 핵심적인 전진기지로서 신라나 고구려 입장에서 모두 중요한 지역이었다고 이해된다. 이사부 출항지 문제해결과 관련하여 필수적인 요건으로서 대규모의 신라군선이 정박할 수 있는 넓은 자연항포구와 그에 수반되는 군시시설로서 성곽의 존재성으로 파악하였으며, 이를 근거로 수군 기능과 관련하여 신라군사가 주둔했던 신라성곽들을 제시해 보았다. 그 가운데서 하천의 하구에 가장 가까이에 소재하는 오화 리산성이 입지와 규모면에서 볼 때 예국고성을 제외한 다른 산성보다도 훨씬 뛰어나고 압도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산성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단정을 내릴 수는 없지만, 삼척 오십천 하구 그리고 그에 접해 있는 오화리산성이 이사부가 우산국 정복을 위해 출항했던 당시 출항지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항포구와 유적지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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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는 해양과 대륙이 만나는 접점에 있으며 우리민족이 활동한 역사활동의 터는 대륙과 한반도와 주변의 해양이 유기적으로 연관성을 지닌 곳이다. 이러한 자연환경 속에서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접변지역은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였다. 동해는 남해나 황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역사의 중심부에서 멀었으며 주체적인 역할을 하기에는 미흡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고구려에게는 일본열도 진출의 거점으로 중요한 측면이 있었으며, 신라에게는 해양진출과 고구려에 대한 공격 및 방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했다. 신라는 소위 海陸政策을 추진하면서 동해 중부지역 및 해역의 중요성이 커졌으며, 거점도시의 육성이 불가피했다. 따라서 삼척 및 강릉지역을 중요하게 여겨 고구려를 비롯한 여러 세력들과 갈등을 벌이면서 자기 세력권하의 거점도시로 육성 하였다. 삼척지역은 본고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상과 경제적 측면, 신앙 기능 등은 물론이고, 항구, 방어체제, 교통망 등의 도시구조면에서도‘海港都市’의 성격과 범주에 적합했다. 신라는 국가정책과 동아시아의 질서 속에서 우산국을 복속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데 신라군이 동해를 횡단하여 독립적인 해상왕국을 공격하 고, 승리를 거두려면 강력한 해양력과 뛰어난 조선술과 항해술, 그리고 훈련된 수군병력이 필요하다. 그와 함께 장기간에 걸친 전쟁준비를 추진하는 능력을 갖춘 거점의 확보가 필요하고, 또한 대군이 발진하는 장소인 軍港의 선정과 활용은 절대적이다. 본고는 삼척이 해항도시 및 군항으로서 타당성이 높은가에 대해서 다양한 입장에서 분석하였다. 그 결과 삼척은 김이사부 선단의 발진기지와 군항으로서 필요한 조건들을 갖추었으며, 동해중부지역에서는 실제 출항지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도시임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당시에 벌어진 전쟁의 중요도와 규모와 작전의 성격 등을 고려하고, 동해중부지역의 자연환경 및 정치적인 상황을 고려하면 삼척지역 만을 사용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히려 삼척을 주력발진기지로 삼으면서 북쪽의 강릉지역 및 남쪽의 울진 등과 유기적인 연합체제를 갖추면서 역할분담을 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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