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김춘수가 이상에 대한 비평에서 ‘이상은 왜 키르케고르의 길을 가지 않았는가?’를 물은 데 착안하여, 시인으로서의 존재론적 지향점이 김춘수는 초월성을 향해 갔으며, 이상은 내재성을 향해 갔다는 전제 아래에 논증되었다. 초월성을 지향한다는 것은 차안으로부터 피안의 신, 존재, 진리, 선을 추구한다는 것이며, 내재성을 지향하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유래한 인간의 본성과 생명력을 신뢰하며 자기의식의 체험을 긍정하는 것이다. 김춘수는 초월성의 관점을 키르케고르의 신학에서 취한 바, 이 논문 또한 그의 사상을 원용하여 논증해 나아갔다. 이상 문학의 절망, 불안, 권태 등은 키르케고르의 1단계 심미적 실존에 머문다. 이상은 키르케고르적인 신학적 세계관과 아가페적 사랑을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천재로서 절망과 불안을 감내하며 내면의 자유를 추구하여 예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기여하였다. 결론적으로, 키르케고르의 신학적 길을 간 것은 오히려 릴케의 영향을 받은 김춘수였다. 한국현대시사에서 모더니즘의 두 거장 이상과 김춘수는 ‘내재성’의 사상과 ‘초월성’ 사상의 두 축을 담지하여 한국의 정신사를 풍요롭게 하였다.
키르케고르는 기독교적 실존주의자로서 릴케와 윤동주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철학자였다. 이 논문은 릴케의 문학에 나타난 키르케고르 사상의 전유와 윤동주의 문학에 나타난 키르케고르 사상의 전유를 비교한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을 ‘죽음에 이르는 병’, 즉 절망을 지닌 존재로 보면서,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신앙뿐이라고 강조하였다. 나아가 키르케고르는 진정한 신의 사랑, 즉,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타자까지 사랑하는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임을 주장한다. 릴케와 윤동주는 인간 존재의 취약한 실존에 대한 자의식을 드러내면서 절망을 표현해 온 시인들이었다. 이러한 점은 키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에 나타난 인간 실존에 대한 이해와 상당히 깊이 맞닿아 있다. 그러나 한편 릴케와 윤동주는 자신들의 문학의 정점에서 인류애라고 할 법한 아가페로서의 사랑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그러한 사랑은 바로 키르케고르의 『사랑의 역사』에 나타난 사랑과 깊이 맞닿아 있다. 특히 윤동주는 예수를 닮아가려 했음을 한국의 역사를 위한 순교자적 죽음으로 증명했다. 그러므로, 윤동주는 릴케와 또 다른 위대한 시인으로 고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