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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미륵신앙에는 하생신앙과 상생신앙이 있기 때문에, 미륵은 보살형과 여래형의 두 종류로 조형화되어 왔다. 이 중에서 보살형의 미륵은 지물 (수병)이나 수인(접법륜인), 좌세(교각좌, 병각의좌, 반가좌 등)에 의해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여래형의 미륵불은 간단하지 않다. 당대가 되면 미륵불은 대부분 예외없이 의좌(병각의좌)상으로 표현되지만, 수 이전의 미륵불은 입상, 부좌상, 교각상, 의좌상, 반가좌상, 유희좌상 등 여러 종류의 형식이 있다. 하지만 수인이나 지물에 미륵으로서의 특징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명문에「미륵」이라고 새기지 않는 한 미륵불을 구분하기란 어렵다. 그렇다면 어떠한 경위에서 의좌상이 미륵불 전용의 자세가 된 것일까? 본고에서는 북조시기의 여래형 미륵상을 주제로 삼아, 의좌형식이 미륵불의 전형이 되는 이전의 상황을 명확히 하려고 한다. 특히 의좌계의 좌세인 교각좌와 반가좌, 유희좌의 여래상 중에 미륵불의 가능성에 관 해서도 검토한다. 또한 산서성 평정에 위치한 개화사 석굴의 수 개황원 년(581)명 불반가상의 명문 중에 보이는「진국왕상」을 실마리로 해서 하생미륵과 성왕상의 관계에 관해서도 주목하였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감숙의 돈황 막고굴이나 운강석굴 중기전반까지의 의좌계 여래상은 대부분 석가불이지만, 5세기말 이후 동부지역에서 미륵불이라고 생각되는 의좌나 교각좌의 여래상이 출현했다. 특히 동위 에서 북제시기에 하북을 중심으로 미륵불이라고 확인되는 의좌상, 반가상, 유희좌상이 많다. 게다가 수초 불교를 부흥시킨 문제의 등장으로 성왕이었던 문제에 하생미륵불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그 이후 당대에는 의좌의 미륵불로 정형화되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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