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활판소의 견본장 조사에서 발췌한 한글 활자의 제작연대 , 활자 크기별로 분류하여 , 자형의 특징을 유형별로 구분하여 분석하였다 . 그 결과 , 1879 년 도쿄 츠키치활판소 견본장에는 3 호 활자 , 그리고 1884 년 4 호활자 , 1903 년 5 호 활자 , 3 호 활자 , 2 호 활자가 소개되었다 . 그 외 슈에이샤 , 아오야마세분도 , 모리카와 류분도는 도쿄츠키치활판소의 활자을 계승하여 제작하였다 . 그러나 각 활판소에서 독자적으로 제작한 활자는 2 호 , 3 호 , 4 호 , 5 호 활자 4 종류이다 . 또한 , 한글 활자를 제작연대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877 년의 상해 미화서관의 4 호 분합 활자이다 . 1879년 도쿄 츠키치활판소가 로스의 주도와 이응찬의 원도로 급조한 3 호 활자이다 . 1883 년에 4 호 활자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 천주교선교사들의 주도로 1880 년 5 호 활자가 개발되었다 . 그리고 도쿄 츠키치활판소와 별도로 , 각 활판소에서 독자적으로 개발된 한글 활자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세이분활판소 4 호 활자 (1902), 산슈샤 5 호활자 (1902), 아오야마신코우도 2 호활자 (1909), 슈에이샤 5 호 활자 (1910) 로 분석을 통해 나타났다 . 그러나 일본 활판소의 견본장에 나타나지 않은 한글 활자도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급해 두겠다 .
“동아일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 한성주보”(1886) 의 창간 이래 , 민간신문사와 출판사에서 본문용으로 한글 4 호 활자가 가장 많이 사용되어 왔던 , 일변도에서 변화를 추구하였다 . “ 동아일보”는 1929 년 대대적으로 신활자 개발과 최신식 인쇄시설의 확충를 계획했다 . 이 활자의 서체는 한국 최초로 일반인에게 공모하여 , 이원모 원도로 제작되었다 . 이 활자는 제작 후에도 2 년간의 실험기간을 거쳐서 완성도를 높이는데 노력하였다 . 모형활자와 종자의 조각 등은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 그리고 , 당시 식민지시대의 특수한 상황에서 한글 활자 제작을 위하여 명확한 컨셉은 , 한자와 한글의 혼용체의 사용 의도에 따라 , 한자의 명조체에 어울리는 한글 명조체의 개발이었다 . 한국 근대 인쇄 활자사에 있어 ,“ 동아일보”는 1933 년 한국 신문사 최초의 자사 전용의 명조체 한글 활자 셋트 ( 초호 , 1 호 , 3 호 , 5 호 , 7 포인트 ) 와 고딕체 2 호 , 4 호 활자가 탄생하게 된것이다 .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경시되고 있다 . 따라서 , 본 연구는 언제 , 어디서 , 누가에 의해 , 어떻게 제작 되었는가 질문을 가지고 , 자료조사의 실증적 검증과 타이포그래피의 분석을 통해서 명확히 정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