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18세기 유럽지도에서 동해가 한국해로 표기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프랑스 지도학자 기욤 드릴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드릴이 루이 15세에게 가르친 지리학 내용과 장 밥티스트 놀린과 벌인 지도 표절소송을 통해 지도 표절 방지 규정이 제정된 과정을 살펴보았다. 또한 드릴은 과학적 지도학의 선구자로 지도의 정확성을 추구하기 위한 논문과 지리학 서적을 집필했는데, 이 내용을 통해서 당시의 지리학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등편각선 지도를 소개했으며, 그가 동해를 한국해로 단독 표기한 근원을 안트안느 토마스 지도와의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일본에서는 높게 평가되는 인물이지만 Hamel에 이어 한국을 서양에 알린 두 번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지도학계에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Siebold의 일생과 업적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특히 의사인 동시에 지도학자 혹은 지역연구가로서의 Siebold가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의 출생부터 학창시절의 자료를 검토함으로써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찰해 보았다. 그 결과, Siebold는 의사 가문에서 성장하였으나 외삼촌의 영향을 받아 다방면에 걸쳐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노력하여 의학자․식물학자․지도학자․지역학자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재작성한 「일본변계약도」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한국령으로표시하였고, 「朝鮮全圖」는 한국에서 제작된 지도가 16세기 경 일본으로 전달되어 1785년 하야시[林]에 의해 모사된 된 것이 일본 국내에 유포된 타미야[田宮]의 「朝鮮八道之圖」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Siebold가 제작한 「일본지도」는 유럽 지도에울릉도와 독도를 혼동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