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2019년부터 2023년 사이에 있었던 칠레 헌법제정 과정을 국민참여의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칠레 사회는 2019년 사회적 대폭발을 계기로 헌법을 새로 쓰는 데 합의하였다. 헌법상 기본권 보장을 목표로 헌법제정을 시도하였으나, 두 번의 시도 모두 부결되었다. 남녀동수 제헌 의회 구성, 원주민 대표성 강화, 시민참여 메커니즘 제도화 등 헌법제정 의 절차적 민주성이 높았다. 그러나 정당을 배제한 제헌의회를 구성함으 로써 제헌의원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국민들과의 목표가 불일치하여 국민 들의 요구를 헌법안에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당대표성과 제정기관의 전문성을 강화하여 2차 시도를 하였으나 헌법에 인간존엄성 을 담아내지 못했다. 헌법안 작성 기간이 너무 짧았고, 국민의 보편적 요 구와 거리가 먼 보수정당의 가치가 지나치게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짧은 작성 기간과 헌법안 채택 방식은 숙의·심의보다는 속도있는 표결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모든 중요한 정치권력들이 헌법제정 과정에 균형있 게 참여하여 숙의·심의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 다.
헌법의 제정과정은 헌법이 제정될 당시의 정치환경 등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을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국민주권주의가 지배하는 국가에서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국민들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헌법제정과정이 이루어진다. 1919년의 대한민국임시헌장, 1946년의 비상국민회의에서 작성된 헌법, 1946년의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에서 작성된 헌법, 1947년의 조선임시약헌, 1948년의 대한민국헌법의 제정과정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헌법제정과정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을 알 수 있다.첫째, 이상의 5가지 헌법은 일제 식민시기의 임시의정원, 해방 이후의 비상국민회의,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대한민국국회를 통하여 제정되었다. 각 시기에서 헌법제정을 담당한 임시의정원, 비상국민회의,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대한민국국회는 일반의회의 역할 뿐만 아니라 제헌의회의 역할을 담당하였다.둘째, 우리나라 헌법의 제정과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식에 따라 진행되었다. ㉠ 헌법제정 당시에 의회의 운영에 관한 법(통상 의회법을 말함)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당시의 관례에 따라 헌법을 제정하는 경우이다. ㉡ 헌법제정에 앞서 의회에서 의회 운영과 관련한 간단한 규칙을 정하고 이에 따라 헌법을 제정하는 경우이다. ㉢ 헌법제정에 앞서 의회에서 의회법과 세부규칙을 제정하고 그것에 따라 헌법을 제정하는 경우이다.셋째, 대부분의 헌법제정과정이 일반법률안의 심의과정처럼 독회제, 즉 제1독회(질의응답, 대체토론), 제2독회(축조낭독), 제3독회(자구수정)로 진행되었다. 독회제 방식은 1919년 임시의정원에서부터 해방 이후까지 계속해서 법률제정과정의 운영방식으로서 관례화되거나 법제화되어 사용되었다.넷째, 우리나라 헌법제정과정에서 국민의 의사가 가장 강하게 반영된 것은 1948년의 대한민국헌법이었고, 가장 약하게 반영된 것은 1919년의 대한민국임시헌장이었다. 즉 국민의사의 반영 정도가 강한 것에서 약한 순서는 1948년의 대한민국헌법〉1947년의 조선임시약헌〉1946년의 비상국민회의에서 작성된 헌법≧1946년의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에서 작성된 헌법〉1919년의 대한민국임시헌장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1948년 대한민국헌법은 제헌의회의 성립→헌법기초위원회의 조직→헌법기초위원회에서 헌법안 작성→국회 본회의에서 헌법안 심의→국회의장의 헌법 공포 순으로 진행되었다.그 밖에 헌법이 다양한 이해관계들의 타협으로 제정되거나 헌법제정자가 헌법대강을 작성한 후 그것에 따라 헌법안을 마련하는 경우 등이 있었다.대한민국임시정부 시절의 입헌주의 전통(특히 임시의정원에서의 입법활동 등)은 해방 이후 국내정세가 변화함에 따라 그 영향력이 약해져 갔지만, 비상국민회의→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남조선과도입법의원→1948년 국회를 거치는 동안 직 ․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