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S. 엘리엇은 『네 사중주』에서 시를 창작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능가운데 하나인 기억의 힘을 사용해서 작품을 썼으며, 기억은 정점(靜點)을 관상(觀想)하 는데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는 베르그송의 순수기억에 영향을 받 았지만 베르그송의 철학을 절대가 없기에 허약한 신비주의라고 폄하 했다. 이런 점에서 『네 사중주』는 단테나 아우수스티누스의 기억의 전통을 따르며, 서양 철학의 전통을 계승하는 관점에서 정점은 이해된다. 이런 기억은 일종의 축복이 며 어둠의 길인 욕망을 제어하여 부정의 길에 거쳐서 정점에 이르게 하여 하나 님을 체험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암시된다. 욕망을 제어하여 멸각에 이르는 부정 의 길은 정점에 도달하는 길이나 인간의 욕망은 제어할 수 없기에 인간이 정점 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네 사중주』에서 기억은 신성한 기억과 정점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는 암시를 준다. 신성한 기억과 정점은 기독교에서 하나님 을 만나는 정신적이고 신비스러운 경험으로 4차원의 종교적인 세계이기에 모순 인 역설로 설명된다. 리틀기딩 교회의 신성한 역사 앞에서 신성한 기억의 축복 을 받은 엘리엇은 과거의 집착과 욕망이 사라지고, 기억의 힘은 사랑으로 승화 되어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로운 축복의 순간인 정점의 시간을 경험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