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은 신여성을 다룸에 있어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일관하던 동시대 많은 작가들에 비하여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고 보였다. 신여성에 대한 극도의 혐오를 보인 남성 작가들이 신여성들의 역사적, 사회적 무지를 강조하여 신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되 그들에게 아무런 변론의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과 달리 염상섭은 신여성들을 주동인물로 다루면서 오류의 삶에 대한 자기변호의 기회를 주고 있으며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워졌다고는 하나 신여성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나 이해의 정도는 그렇지 않았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염상섭은 남성의 근대성은 긍정하면서도 여성의 근대성에 관하여 매우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였다. 그는 여성의 주체적 행보를 주시하기보다 전통적인 여성성을 공고히 견지하며 여성을 극단적으로 이분화하려 하였다. 전통적 아비투스를 답습하고 그 안에 안주하는 여성들을 긍정적으로 보는가 하면 전통적 여성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성들을 부정, 그들의 존재를 위기로 담지하였던 것이다. 염상섭의 이런 위기의식은 작품 내에서 작중인물로 하여금 감상적인 토로와 한탄을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연설 장면의 빈번한 활용이나 인물의 비분강개식 토로를 통하여 작가는 당시 사회에 대하여, 또 신여성에 대하여 하고자 하는 말을 지나칠 정도로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소 미숙한 방식의 글쓰기 방식을 무릅쓰더라도 일제하의 경박한 근대성에 대한 경계 등 작가의 주제의식을 뚜렷이 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라 판단된다. 하지만 염상섭은 당시 부정하고자 하는 모든 부정적 가치를 신여성에게 전가함으로써 이율배반적 근대의식을 보이고 있다. 그의 이러한 극단적 젠더의식은 당시 사회에 진출하려는 여성 지식인을 배제하고자 한 남성 지식인들의 그것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