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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鶴山樵談󰡕은 許筠(1569~1618)이 25세 되던 1593년 강릉에서 기록한 시화 집이다. 鶴山은 허균이 이 시화를 저술하던 시기에 머물렀던 愛日堂 북쪽에 있 는 靑鶴山이다. 󰡔학산초담󰡕 後記에서 애일당이 있는 뒷산의 이름을 따서 蛟山 子라는 호를 처음 썼다. 허균은 아직 문과에 급제하기 전이라 ‘청학산 나무꾼의 이야기’라는 정도로 겸손하게 책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필자가 현재까지 확인한 󰡔학산초담󰡕 이본은 6종이다. 이인영의 장서인 淸芬 室文庫에도 󰡔학산초담󰡕이 소장되어 있었지만,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다. 李仁榮 은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던 1937년부터 고서를 수집했는데, 희귀본 540종의 해제를 작성하여 1944년에 󰡔淸芬室書目󰡕을 탈고하였다. 그가 소개한 󰡔학산초 담󰡕의 서지에 「寒皐館外史題後」를 인용 소개하였지만, 출전을 󰡔담정유고󰡕라고 밝힌 것을 보면 󰡔한고관외사󰡕에서 전사한 것은 아닌 듯하다. 10행 24자라는 필 사형식도 다르다. 현재 확인된 6종 가운데 규장각 소장본만 단행본이고, 다른 5종은 叢書에 실 려 있다. 가장 오래된 본은 이장재가 1790년에 편찬한 󰡔청구패설󰡕에 실려 있다. 󰡔패림󰡕이 일찍 영인되어 널리 알려졌지만, 김려가 편찬한 󰡔한고관외사󰡕도 󰡔패림󰡕 보다 시기적으로 앞선 총서이며, 󰡔패림󰡕은 󰡔한고관외사󰡕와 󰡔창가루외사󰡕를 저본 으로 해서 편찬했다. 󰡔패림󰡕에 실린 󰡔학산초담󰡕은 당연히 󰡔한고관외사󰡕를 베낀 것인데, 내용과 형태가 같을 뿐만 아니라 글자의 위치까지도 그대로 베꼈다. 그 러나 󰡔패림󰡕본에 빠진 구절들이 󰡔한고관외사󰡕본에는 온전하게 실려 있다. 󰡔한 고관외사󰡕본을 놓고 필사하는 과정에서 빠진 것이다. 󰡔대동패림󰡕본은 35칙만 필사되어 자료적 가치가 적으며, 장서각본도 󰡔청구패 설󰡕본이나 규장각본과 같은 내용이어서 자료적 가치가 적다. 󰡔청구패설󰡕에 실린 󰡔학산초담󰡕이 가장 앞선 본이기는 하지만, 주석이 정연하 기로는 󰡔한고관외사󰡕본을 따를 수 없다. 欄上의 기록이 덧붙긴 했지만, 체제가 정연하지 않다. 현재 확인되는 이본만 놓고 본다면 夾注는 김려의 󰡔한고관외사󰡕 에 실린 󰡔학산초담󰡕에서 시작되었으니, 김려가 정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협주를 붙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더 많은 이본을 확인한 뒤에야 확실히 판단할 수 있다. 필사 습관에 따라 다르게 쓴 글자들은 선본 확정에 큰 문제가 아니다. 󰡔패림󰡕본이 󰡔한고관외사󰡕본을 충실하게 전사했지만 몇 군데 잘못된 부 분이 있어, 현재로서는 󰡔한고관외사󰡕본이 가장 선본이라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