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寒岡 鄭逑(1543~1620)의 학문경향과 정주학의 수용양상을 조명해 본 것이다. 한강은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기에 활동했던 영남사림의 대 표적 인물이다. 그는 타고난 자질과 家學으로 내려오는 학문적 전통을 계승한 바탕위에 당대의 큰 스승을 찾아뵙고 그들의 학문적 장처를 두루 섭렵하였다. 이를테면, 한훤당 김굉필의 正學과 남명 조식의 正論과 퇴계 이황의 진실한 도 [的旨]를 받아들여 이후 당대의 독특한 학문경향을 형성하였다. 그의 학문경향은 下學重視의 경향과 博學의 추구이다. 하학중시의 경향은 일 상생활의 기본예절을 실천하는 하학공부를 통해 天理인 上達로 나아가는 학문 차서를 강조하는 학문관점이고, 박학의 추구는 학문의 규모와 범위가 宏博하다 는 것인데, 그만큼 현실의 쓰임에 대비하는 실용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 다. 나아가 이 같은 학문경향은 당대의 학문풍조에 대한 경종과 반성적 의미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한편, 한강은 20세 전반에 자신의 학문의 방향성을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그 것은 과거의 길을 단념하고 求道의 자세로 정주가 남긴 성리학에 종사하는 것 이었다. 그가 남긴 정주학과 관련한 편찬저술의 특징을 살펴보면, 성리이론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고 심성함양이나 내면의 수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다른 하나는 편찬저술이 자기 학설을 내세우는 저서의 형태라기보다는 경전 중 에 학문의 요점을 발췌, 요약하고 간간히 자신의 설을 붙이는 ‘編N’이나 ‘集N’ 의 저술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정자와 주자, 퇴계의 편찬저술 방식을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한강의 수양론은 퇴계와 남명의 수양론의 장점을 취하여 ‘敬’과 ‘義’를 다 같이 중시하는 ‘敬義夾持’의 수양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정이천과 주자, 그리고 퇴계로 내려오는 수양론의 학문적 전통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 점이 한강 수양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