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1

        1.
        2013.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점필재 김종직은 조선초기 사림의 종사이다. 그가 조선조 도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것은 그 자신이 문학과 학문에 있어서 탁월한 성취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방 행정을 통하여 인륜 도덕을 숭상하는 사회 기풍을 일으키는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었고, 그 문하에 도학의 이념을 실천하는데 앞장선 훌륭한 후학들을 양성해내었기 때문이다. 점필재의 도학 이념에 입각한 정치 교화와 교육의 실천 모범은 그가 지방관으로 근무하였던 10년 동안에 가장 잘 나타난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글에서는 점필재가 함양군수로 봉직하였던 5년 동안의 시문 가운데 정사를 임하는 태도와, 풍교의 대책과 강학 및 유상의 정서를 추적하여, 점필재의 평소 학문 사상과 정치 교육의 성과가 조선전기 도학의 선구임을 밝히고자 하였다. 점필재는 함양군수로 부임하면서부터 수시로 관내를 순시하면서 지역의 역사와 물산, 홍수의 재해, 조세와 부역 등, 民生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었고, 함양읍성 나각을 보수하고 다원을 경영하는 등 조선초기 지방관원으로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고을 주민의 편익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하여 시행하였다. 그는 또한 향교를 보수하고 향교를 중심으로 향음 향사 양로의 의식을 거행하여 인륜 도덕으로 풍속을 순화한다는 風敎의 실현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한편으로 많은 문생들을 받아들이고, 그 문생들과 고을 주변의 산천을 다니면서 수시로 학문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도학과 심학의 단서를 열어주었다. 점필재는 함양군에서 시행한 시정과 풍교 강학의 규범은 이 시대 학자들에게 도학 정치 실현의 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인재들은 조정의 관료나 재야의 문인 학자로서 그의 모범과 신념을 널리 확산함으로써 한 시대의 새로운 조류를 형성하였다. 그런 점에서 함양은 점필재 김종직의 학문 사상과 경륜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 조선조 도학의 본류를 형성하는 전환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