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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연구는 1959-1969년 사이에 네 개의 장로교단(고신, 기장, 통합, 합 동) 사이에서 일어난 5차례의 연합운동에 대해 발생과정, 논쟁점들, 실패의 이유에 대해 고찰했다. ⑴ 제1차 연동-승동(훗날 통합-합동) 재연합운동 (1959-60)은 중립파와 선교사들의 중재로 시작되었다. 분열의 상처가 채 아물기 전이었고, ICCC자금 지원에 의존하여 승동측이 연동측에 신학교재 산을 되찾으려는 소송을 준비하는 중이었기에 화해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1960년 2월 조직된 통합측은 WCC탈퇴를 결정했다. ⑵ 기장-통합 귀일운 동(1961)은 한국신학대학 출신의 목회자들의 인적 관계로 인해 시작되었 다. 강단교류를 통해 우정회복과 신앙교류를 한다는 소박한 운동이었으나 통합측 교권의 반대로 중단되었다. ⑶ 제2차 통합-합동 재연합운동 (1961-63)은 고신-승동의 합동총회(1961)이후 희년총회(1962)에 일치를 기 대하는 평신도들의 열기에 힘입어 시작되었다. 실패의 원인은 NCC 탈퇴에 대한 이견 때문이고, 합동으로부터 성경장로교회(1961)와 호헌교단(1962) 이 분립했고, 고신이 환원(1963)함으로써 연합운동의 동력이 떨어졌다. ⑷ “합동촉진론”(1964)은 NCC를 탈퇴하고 합동과 일치하자는 주장으로 경북 지역의 통합측 노회 안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통합측 리더들은 무례한 유인물을 배포한 합동지도부들의 진실성을 의심해서 이 운동을 규제했다. “장로교연맹체론”(1964-65)은 기장-통합 소장파들로부터 시작되었고 교단 연합이 어려우니 연맹을 구성하자고 했다. 합동과 고신은 이에 응하지 않 았다. ⑸ 3차 통합-합동 재연합운동(1968)은 1967년에 합동교단에서 내부 교권갈등으로 지방주의(Synod제도 추진)가 강화되자 정치적 해결책으로 시작되었다. 합동측은 보수-진보 진영 논리를 강화해서 통합측의 신학적 내부갈등을 유도했다. 하지만 통합측 내부분열이 심해지자 통합총회는 1968년 9월 재연합운동을 중단시켰고, 이듬해 압도적인 다수표로 WCC복 귀를 결정했다.
        2.
        2011.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study reviews the existing discourses on church disunit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It aims to examine the structure and logic of the discourses rather than criticising the discourses themselves. In doing so, it first accepts the existing discourses as such through suspension of judgment, and then clarifies the limitation of the discourses and suggests the feasible, if any, solutions. In the existing discourses on church disunity, it is said that the following issues are most important for each groups: the discipline issue for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Koshin (Koshin group), the issue of the doctrine of the Bible for the Presbyterian Church of the Republic of Korea (PROK, Kijang group), the issue of the ecumenical movement for 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Hapdong group), and the personality issue for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Tonghap group). Although different Korean Presbyterian denominations delivered their own discourses on church disunity, we came to notice the discrepancy between their argument and the reality of the churches when examining their church history. Such discrepancy, however, strongly suggests that in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there can be possibilities to change the course of history. As the Early Church took the opportunity for unity and development, facing church disunity, the Korean Church, particularly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is expected to do the s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