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예이츠의 시를 이야기 할 때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 중의 하나가 그의 신비주의(mysticism)의 심취이다. 그리고 예이츠 연구가들은 신비주의가 그의 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아니면 그의 사상,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의 A Vision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전자에 속하는 비평가들은 David Pierce, Virginia Moore, Harbans Bachchans, M.C. Flannery, Remesh Chandra Shah, 그리고 William T. Gorski 등이 있고, 후자에 속하는 학자들은 Richard Ellmann, Graham Hough 등이 있다. 이들이 예이츠의 신비주의의 심취를 바라보는 시각은 텍스트(Mysticism)와 리더(Yeats)의 관계에서 리더를 무시한 텍스트에만 초점을 맞춘 결과가 아닌가 한다. 즉 신비주의의 영적인 면이 예이츠가 신비주의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결정지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면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예이츠가 영적인 성장만을 위해 신비주의를 공부했다는 것은 예이츠의 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신비주의의 영향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믿는다. 다시 말해 예이츠와 신비주의와의 평생에 걸친 애정관계에 대한 부분적인 모습만 제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논지는 텍스트와 리더의 관계에 있어서 리더 즉 예이츠의 입장을 다각도에서 고려하면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한다는 것이다. 예이츠는 무척이나 실질적인 사람이라는 점이고 그의 신비주의에 대한 접근은 항상 그가 신비주의를 어떤 목적으로 이용하려 했나를 따져보아야 한다. 다시 이야기하면 리더의 실용성이 신비주의의 영적인 면을 콘트롤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가 신비주의에 심취할 때 그가 처한 정치적인 상황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예이츠는 19 세기 말 분열된 아일랜드의 정치적 상황을 어떻게 하면 치유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정치적 성향이 짙은 시인이었으며 신비주의를 연구하던 중 아일랜드의 정치적 분열을 화합시킬 형이상학적인 모델을 신비주의에서 찾게 되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신비주의의 기본 원리 즉, 상반된 세력의 합일이 깨달음에 도달하게 하는 초석이 된다는 것에 기초,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연방주의와 독립주의로 분열된 나라의 화합을 신비주의 색채가 짙은 그의 시로써 해결책을 모색하려 했던 것이다. 그는 죽기 한달 전 Ethel Mannin 에게 편지를 보내 “Am I a mystic? No, I am a practical man.” 이라고 쓰고 있다. 이 두 줄이 그의 평생에 걸친 신비주의와의 관계를 요약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예이츠는 실용적인 사람이며 그의 시학은 늘 사회에 도움이 되고 또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야한다고 믿는 그의 실용성의 결정체이다. 그는 종교적인 vision이 아일랜드가 처한 정치상황을 화합의 길로 안내할 것을 믿었다. 물론 그 자신 프로테스탄트의 출신으로 그가 결코 버리지 못한 가톨릭에 대한 편견과 종교적 vision에 대한 그 자신의 회의감 때문에 그의 믿음이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본 연구는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인 존 듀이의 공생적 합리주의 모형에 대한 분석과 이 모형의 계획이론의 적용에 대한 사회규범적 논의에 관한 것이다. 다양한 사회과학분야의 문헌고찰과 듀이를 비롯한 실용주의학파들의 연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본 연구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사회 규범적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계획이론의 이론적 근거를 존 듀이의 공생적 합리주의에서 찾고자 하였다. 민주주의의 속성상 계획과정에서의 상충과 갈등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이러한 갈등과 상충이 발전적 도구로 존재할 수 있다고 제시한 듀이의 공생주의는 합리성의 가능성에 바탕을 둔 고전적 합리주의 이론을 대체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존 듀이의 공생주의 이론에 대한 연구는 기존의 계획이론분야에서는 제시된 적이 없는 최초의 연구로서, 향후 계획이론 분야의 발전에 있어서 이론적 분석의 한 축을 제시했다는데 본 논문의 기여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