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한일 양국간의 외교문서에 나타난소위 ‘비거주정책’(policy of non-inhabited island)은 결코 일본의 주장과 같은 ‘공도정책’(Island Vacancy Policy)이 아님을 국제법 적으로 밝히고자 했다. 1954년 2월 10일자 ‘일본정부의 견해’에 의해 제기된 조선 초 ‘수토 정책’(搜討政策)이 독도 ‘영토 주권의 포기’에 해당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일 양국간의 구술서를 통한 논박에서부터 시작된다. 수토정책에 관한 역사학의 연구는 울릉도와 독도에 서의 쇄환(Evacuation), 수토, 순심 정책 차원에서의 접근이었다.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정부의 관리대책은 대략 15세기 초기의 쇄환정책과 18 세기 후기의 수토정책으로 구별하여 고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고는 이러한 구별을 두지 않고 또 제도적 측면을 포함한 단지 ‘수토정책’으로 칭하였다. ‘수토정책(수토제도)’란 2~3 년에 한 차례씩 관리(수토사)를 파견하여 울릉도와 그 부속도서인 독도를 순검 관리토록 한 정책이다. 이 수토정책은 여말선초에 왜구의 노략으로 피해가 심해지자 결국 1403년(태종 3) 8월 주민들의 피해를 우려해 육지에 나와 살도록 하는 ‘쇄환정책’으로 최초 실시한다. 이에 1416년(태종 16)년에는 울릉도와 주변 섬을 조사하기 위해 삼척만호 김인우를 무릉등 처안무사(武陵等處按撫使)로 임명을 시작으로 약 400여 년간 관리(수토사)를 파견한 조선의 도서관리 정책의 하나이다. 본고는 수토정책에 관해 역사적 검토를 바탕으로 현재의 한일 양국의 해양정책을 고찰하 고 난 뒤, 이러한 수토정책이 국제법상 ‘영토 주권의 포기’에 해당하는가를 법해석학의 견지에서 분석해 보았다. 즉 조선의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수토정책은 국제법상 영토주권 포기 의 ‘요건’인 영토 포기의 주체와 객체, 구성요건, 효과 등 요건 구비 분석 결과, 이는 결코 영토주권의 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설사 일부 일본학자의 주장처럼 공도정책 이 맞는다 치더라도 수토정책이 국제법상 영토주권의 포기에 해당되지도 않으며, 독도가 곧바로 무인도 또는 무주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