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부터 근대전환기에 이르기까지 서학(西學)은 하나의 이질적인 문화 체계로서 성리학을 정통으로 삼았던 조선 사회에 심대한 충격을 주 었다. 본 논문은 서학의 전래부터 조·중 근대 해로의 개통에 이르는 역사 적 시기 동안, 조·중 서학 지식 네트워크의 변천 과정을 통시적으로 고찰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17세기 초부터 시작된 초기 서 학 지식 네트워크는 전통적인 ‘북경-한성’ 간 육로 사행로에 의존하여 북 경을 중심으로 한 지식 유통을 형성하였으나, 청나라와 조선의 금교(禁敎) 정책으로 인해 해당 네트워크는 한때 차단 국면에 접어들었다. 19세기 중 반 이후 중국의 양무운동 전개와 조선의 개혁 요구에 따라, 서학 서적은 연행사를 통한 재도입, 수신사를 통한 일본 경유, 그리고 영선사의 천진 파견 등을 거치며 다각적인 도입 경로를 보이는 과도기적 특징을 나타냈 다. 최종적으로 1882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의 체결과 ‘상해-인천’ 항로의 개통을 기점으로, 조·중 서학 지식 네트워크의 패러다임은 육로 ‘북경-한성’에서 해로 ‘상해-한성’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맞이하였다.
이 논문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양인이 중국 속담을 기록한 문헌과 서지적 특징을 살펴보고, 서양인들이 주목한 중국 속담의 가치와 효용을 분석함으로써 당시 중국 속담이 수행한 역할을 규명한다. 초기 선교사와 외교관, 작가들은 속담을 중국어 학습에 활용할 수 있는 최적 의 제재로 인식하여 중국어 교재에 수록하였으며,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폴 페르니, 윌리엄 스카보로, 브라이언 브라운 등은 속담집을 전문적으로 편찬하면서 중국어 원문과 영어 번역문을 병렬하거나 주음을 덧붙여 학 습 효과를 강화했다. 잡지도 역시 학습의 효과를 함께 고려했기 때문에 동일한 형식으로 출현했다. 반면, 견문록에서의 중국 속담에 대한 기록은 서양에 중국 문화를 알리는데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영어 번역문만 실렸 다는 점이 상이하다. 서양인은 중국 속담의 풍부함, 운율미, 그리고 지혜 에 주목하여 중국인의 문화를 이해하는 통로로 활용했다. 속담집의 상당 수는 선교사에 의해, 그리고 선교 단체를 통해 출판되었으며, 설교에 적 극 활용되었다. 따라서 중국 속담 기록은 단순한 문화적 호기심이나 언 어 학습을 넘어, 기독교적 목적이 투영된, 언어 학습· 문화 이해· 선교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된 복합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