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이츠의 일본의 노드라마와의 조우는 1916년『매의 우물』을 쓰게 하는데, 이 작품에서 그는 시극에서 직면한 여러 문제와 자신의 시적 문화주의의 애매한 표현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다. 노드라마를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에 예이츠는 대중적 연극개념에 반대한 자신의 미학적, 정치적 이상을 담아 재창조한다. 예술적으로, 예이트는 “극의 형식을 발명”해내는데, 이 형식은 반연극적, 반사실주의적 화법을 실행할 뿐 아니라, 일반대중을 포용하기를 거부하는 친밀한 극을 만든다. 정치적으로, 예이츠의 시적문화주의는 노에 영감을 받은 극에 적합한 신비주의철학과 결합한다. 시극은 이미지의 집중이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의식이어야 한다고 예이츠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공연 리추얼이 야기하는 주술적 상태는 부정적 양상을 초래한다. 매의 우물에서, 쿠훌린의 마지막 영웅적 행위는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주술의 결과이다. 이렇게 이 극은 초기극『캐스린 니 훌리한』에서 보이는 문화적 주술의 시학으로서의 문화주의의 지속성에 우리의 관심을 끌게 한다.
이 논문은 T. S. 엘리엇의 시와 에세이 분석을 통해 그의 글이 담고 있는 반민족주의적 사상을 그가 꿈꾸던 유럽의 문화적 통합과 관련하여 연구한다. 이를 통해 그의 반민족주의는 일종의 확장된 민족주의이며, 그의 이러한 범민족주의는 민족주의의 원초적인 관점과 도구적 관점에 기반하였음을 밝힌다. 엘리엇은 제1차 세계 대전 후 유럽 국가들 간의 전쟁을 강하게 반대했고, 유럽은 평화를 위해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민족주의를 반대한 이유는 민족주의가 유럽의 문화 통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지 민족주의 자체의 논리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따라서 유럽 문화 통일을 주장하는 엘리엇의 반민족주의가 민족주의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는 것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그의 반민족주의는 민족주의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민족 구성원의 “의지”와 민족국가의 형성과 유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통”에 관한 개념을 민족주의와 공유하고 있다. 이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남북통일을 생각함과 동시에 세계 평화를 위해 각 국의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인류는 언제나 과거를 통해 배우기에 한국에서 엘리엇 읽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