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에 들어 중국 시는 급격한 사회변화가 초래한 혼란 속에서 다양한 방향을 모색했 다. 현실비판과 자아의 성찰이 함께 시작되고 있었지만 여전한 사회정치적 지배구조로 인하 여 시는 주로 집단의식을 벗어난 개인의 자아를 향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路也는 주위의 변화를 살필 줄 모르는 성격과 자기 자신에 대한 천착으로 인하여 독특한 시 세계를 보여주 는 시인이다. 그녀의 시가 2000년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는 것은 현실과 자아의 관계가 고독 으로 귀결되고, 자신의 진실한 순간들이 타자에 의하여 수용되지 않으며, 현실을 벗어난 자신 의 꿈 또한 소외를 심화시켜갈 뿐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독과 어긋남, 그리고 자신으로 말 미암은 소외는 21세기의 현실을 살아가는 중국인과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Transhumanism is a social trend that characterizes a growing number of people who are confident that technologies of human enhancement will enable them to transcend physical and mental weakness, frailty and imperfection. Life extension, intelligence increase, disease resistance, rejuvenation and genetic fortification ... these and other boons lie only slightly in the future, according to transhumanists. There is an inverse relation between technical and philosophical sophistication among leading transhumanist. For example, Nick Bostrom professes nearly blind faith in European Enlightenment rationality and the salvific power of science and technology. For all its technical savvy, transhumanism's uncritical embrace of Enlightenment philosophy renders it a doctrinaire trend in popular cultural, not a philosophical one. Sufism emerged early in the history of Islam as a blend of East Asian spirituality, orthodox Islam and Greek philosophy. Despite its emergence within a revelation-based religious culture, Sufism's deliberative refinement of philosophical anthropology over the course of 13 centuries lends a selfreflexive character to its approach to human transformation. I will argue that while it shares certain transcendental ideals that are traditionally found in Sufism, transhumanism understands and pursues these ideals without significant self-critical evaluation. Transhumanists tend to reduce erstwhile religious ideals to upgradeable, more or less plausible technological products. By contrast, the Sufi perspective offers a non-literal, nontechnological ideals of human perfection. Based on this contrast, I contend that while transhumanists are moved by the same transcendental urges, they act on these in ways that are at best futile, and at worse, ultimately self-defeating.
『대성당 살인사건』에서 엘리엇은 하늘의 율법과 땅의 법이 충돌하는 양상을 그린다. 교회는 문제나 사건들을 율법이나 성령의 감화로 해결해왔고, 세상은 헌법이나 법률로 해결해왔다. 교회에서는 사제들이 주로 그 임무를 담당하지만, 세상에서는 대법관이 그 임무를 담당하였다. 이 처럼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교차점에 토머스 대주교가 있었다. 당시 헨리 2세는 통치의 효율성을 위하여 교회를 통하여 손쉽게 처리하려 했다. 즉 세상의 법에 교회의 법을 포함하는 계략을 세웠다. 그것이 바로 클라렌든 칙령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토머스 대주교는 이를 거부 하고 7년간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순교하기 위하여 귀환한다. 그는 유혹 자들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삶과 의지가 야망과 쾌락으로 인해 암흑의 핵심인 지옥까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계획했던 순교의 의미를 재정립하게 된다. 그는 두려움이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져서 기사들을 맞이 하고 결국 순교된다. 토머스의 피는 예수의 보혈처럼 헨리 2세의 질주 를 그치게 만들고, 교황과 화해를 이끌어, 캔터베리/땅과 천국에 진정한 평화가 깃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