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보훈의 구체화된 내용으로서 민주화운동 의 정신을 계승하고 선양하는 작업이 어떤 헌법적 의미와 성격, 헌법적 근거를 지니고 또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밝힌 것이다. 또한 민주화운동의 정신 계승과 선양의 과제를 주도하는 ‘민주화운동기념 사업’의 주요 활동과 성과를 살펴보고, 나아가 또 다른 주체로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민주화운동 관련 사회단체의 활동까지 함께 아울러 살펴보았다. 우리 법제에서 민주화운동은 제대로 된 보훈의 대상으로 인 정받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일부 4·19나 5·18 등 몇몇의 민주화운동에 대 해서는 법적 수용이 이루어졌고 그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도 록 법률적 근거를 명시하고 있지만, 그 밖의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헌법 과 법률적 근거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한 공훈과 나라사랑정신의 선양 내지 공훈선양사업 등이 다양 하게 추진되고 있지만, 여전히 시민들이 민주화운동의 정신계승과 선양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다. 관련 법령의 개정을 통해 민주 화운동의 정신계승과 선양 사업이 안정적으로 수행되도록 하고 국민의 참여와 민주주의의 실질적 발전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운동은 민주주의 헌법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 헌법의 주인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누군가 용기 있게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적극적으 로 나서는 행동이다. 민주주의 헌법이 위기에 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용기 있게 저항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헌법은 결국 죽음을 맞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역사적, 헌법적으로 평가하고 그 의미와 뜻을 기리며 그 희생자와 공헌자에게 보훈으로써 후세에 모범이 되도록 하는 일은 민주주의 헌법이 스스로 유지ㆍ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암묵적 조건이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보훈’이란 민주화운동에서 희생하 거나 공헌한 사람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그와 그 유족 또는 가족의 영예로운 삶과 복지향상을 도모하며 나아가 국민의 나라사랑 정신을 함 양함을 뜻한다. 이러한 보훈은 다시 희생ㆍ공헌자 또는 그 유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으로 구분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라든지 “불의에 항거한 4ㆍ19민주이념”과 같 은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한다고 명시할 뿐만 아니라, “조 국의 민주개혁의 사명”,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 등을 근거 로 하여 민주화운동에 대한 보훈을 헌법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일제에 의해 자주와 인권이 짓밟혔을 때 천도교와 연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고 이에 적극 참여했다. 세계사와 구속사를 이원론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만세운동이 기독교 신앙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는 구원받은 피조물 위에 그리스도의 주권을 세우는 하나님 나라를 목표로 하며, 교회사뿐 아니라 전체역사를 그 영역으로 삼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참여한 만세운동을 신학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은 하나님 의 선교 관점에서 3·1운동과 익산4·4만세운동을 중심으로 기독교와 의 관련성과 선교역사적 의미를 준비과정과 피해상황에서 서술하고자 한다.
시장의 글로벌화는 시장환경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이에 부응하여 디자인을 통해 글로벌경쟁우위를 차지하려 노력하는 글로벌 기업들을 위해 글로벌 디자인 프로세스를 제안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글로벌 소비자문화의 의미구조와 이동의 관점에서 글로벌 세분시장을 구성하는 글로벌 소비자문화, 글로벌 디자인 및 글로벌 세분시장을 구성하는 소비자간의 순환적 인과구조를 규명하여 글로벌 디자인을 위한 새로운 연구의 틀을 창조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을 위해서 글로벌 소비자문화-기반 글로벌 디자인 프로세스를 제안하는 데 목적이 있다. 연구목적을 위해 먼저 글로벌 세분시장과 글로벌 소비자, 글로벌 소비자문화 및 글로벌 디자인을 고찰한다. 그 다음 이들 간의 인과구조를 규명하기 위해 이론적 고찰로서 McCraken의 제품의 문화적 의미구조와 이동에 관한 이론을 적용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연구의 틀을 구성한다. 그리고 글로벌 소비자문화 중 10대 청소년의 글로벌 문화에 대한 2차 자료를 바탕으로 사례연구를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연구의 결과로서 글로벌 소비자문화-기반 글로벌 디자인 전략을 제안하고 미래 연구를 위한 방향을 논의한다.
The independence movement during the Japanese Military Rule during 1910s was definitively not occlusive. Movements toward Korean independence continued both within and outside the peninsula during this period, and the energy of resistance was continually accumulating. Because of capabilities for autonomy, the March First Movement could respond more efficiently to international context after the end of World War I. Compared to the May Fourth Movement of China or the Rice Riots of Japan, the March First Movement was peculiar in that it was a relatively large-scale, pan-Korean independence movement. The experience of the March First Movement for the Korean people served as the fundamental matrix of subsequent independence movements and as part and parcel of their ethno-national, historical memory, was transported through liberation from Japan’s colonial rule down to today’s unification movement. Analysis of the specific plans for independence movements and the actual activities of the Korean national representatives vis-à-vis records of examination from the police, prosecution, and each level of the judicial court as well as pilot studies demonstrates that at the outset, the plans for the movement did not envisage pan-Korean demonstrations or coalition with students. The limitations of the independence movements by the national representatives were in fact overcome by the actual conduct of the masses that began at T’apgol Park on March 1,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