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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조선조 말엽 유행한 명현록에 나타나는 명현가의 전국적 현황과 도별 양상, 경상도 지역 명망 문중 및 그 현조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명현록은 처음 ‘道學’의 계보에 연결되는 인물을 수록하는 것에서 비롯되었으나, 점차 道學 뿐 만 아니라 忠節이나 여러 방면의 업적으로 현저한 국가적 공헌이 있는 인물로 수록 범위가 확대되고, 이후 각 성관별로 이를 정리, 수록하는 형태로 진전되었 다. 각 성관별 명현을 수록한 명현록은 뒷 시기로 가면서 명현 후손의 세거지와 사승 관계를 명시하는 것이 기록상 중요시 되고, 뒤이어 이를 경상도라는 일정 권역에 한정해서 명현가와 그 현조의 휘·호·본 정도를 간략히 명시 수록하는 경 우로 나타난다. 한편 이 단계에 이르면 명현록에 등재된 인물은 조선조의 수많 은 명현들 가운데 그들의 후손이 동족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인물만을 대상으 로 하게 된다. 전국의 각 성관별 명현의 후손 거주지를 볼 때 서울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여 조선조 말엽에 있어서 서울은 여러 명현가의 소굴로 나타나며, 경상도가 타도 에 비해 많은 등재 인물수를 보임이 주목된다. 고을로는 청주, 진주, 양주, 안동, 성주 등의 순으로 등재 인물의 후손 세거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 명현가가 지 방 행정의 중심지에 비교적 많이 집중되어 있는 점도 주목된다. 경상도 각읍 명현가를 등재 수록한 수종의 명현록을 통해서 특정 성씨 앞에 특정 촌명을 冠하여 ‘○○金氏’와 같이 불리워진 5백 수십여 문중의 존재가 조 선조 말엽 경상도 지역에서 확인되며, 이들 가운데는 200여 내외의 숫자에 달 하는 명망 문중의 존재도 추측된다. 경상도 각읍 가운데 진주는 도내에서 가장 명현가의 수가 많은 고을로 나타나며, 우도가 좌도에 비해 2배나 등재 인물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이들 지역에서 특정의 현조를 중심으로 동성의 씨 족이 결집되는 움직임이 활발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본다. 명현록에 등재된 경상도 각읍 명현가의 현조는, 단성 지역을 중심으로 살필 때, 주로 남명학파가 형성되고 당쟁이 전개되던 선조-인조 년간의 시기에 즈음 하여 지역 사회에서 주목되는 활약을 보였던 유명 인사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 들 유명 인사의 후손은 17-18세기에 걸쳐 향권을 지속적으로 장악하는 유력 씨족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후 19세기 말엽에 이르러서도 문집을 남기는 인사 를 많이 배출하는 등으로 해서 여전히 명망을 유지하는 씨족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제조건을 충족하는 유력 씨족이 조선조 말 명현가로 알려져 여러 명현록 에 기록되어 나타나는 바, 이는 비단 단성 지역만이 아니라 경상도내 다른 고을 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