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헨리 6세』 2부와 3부가 가부장제의 이념을 바탕으로 남녀 간의 뚜렷한 역할 구분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고 전통적인 성 역할에 따르지 않는 마가렛과 같은 여성의 양상을 살핀다. 주로 마가렛의 용맹성, 전투력과 성적 매력과 방종이 주변 남성 인물의 가부장적인 가치에 대립되는 모습을 추적한다. 마가렛과 일리노어 등이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남성들, 특히 영국 남성을 대표하는 기사도적 영웅들과 대항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이 여성 전사들이 대표하는 가치가 어떻게 남성들의 이상적 영웅주의나 부자간의 혈연 중심 관계에 대립하는지도 살핀다. 일부 남성 인물들이 감정에 치중하는 연인의 모습을 보이며 남성간의 유대를 약화시키는 결과에 이르는 아이러니한 상황 또한 살펴본다. 남성들이 이들 여성과 관련하여 남성성을 잃게 되는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헨리 6세』 2부와 3부에 담긴 가부장제의 양상과 여성 전사의 전복적 힘을 충실히 고찰하고자 한다.
『여선외사』는 청대에 창작된 백화장편소설이다. 본 논문은 이 소설이 ‘정난지변’을 소설의 주요 플롯으로 차용하면서, 전쟁을 이끄는 주체로 남성이 아닌, 당새아와 다양한 여성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운 점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먼저 소설 속 다양한 여성형상을 인물이 속한 세계에 따라 선계, 마계, 인간계로 나누어 특징을 분석한 후, 여성인물들의 가치와 신념이 작동하는 방식의 고찰을 통해 이러한 여성형상이 갖는 소설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논문은 잉카 쇼니바레의 《머리 없는 형상》 작업에 나타난 식민권력의 전복을 탈식민주의 이론 가 호미 바바의 ‘모방’ 개념을 통해 분석하였다. 쇼니바레는 유럽의 제국주의 침략이 극에 달한 18-19세기의 역사·문화를 패러디하고 식민지배자로 등장하는 인물의 머리를 자름으로써 권력의 불균형에 저항하고 인물에 식민사의 산물인 더치 왁스 천으로 만든 빅토리아 시대 의상을 입힘으로써 제국과 식민, 유럽과 아프리카 등의 이분법적 대립의 해체를 시도하였다. 그의 작품은 ‘거의 동일하지만 아주 똑같지는 않은’ 차이를 드러내는 피지배자의 과장된 모방을 통해 지배자의 정체성과 지배-피지배 구조를 위협한다. 또한 과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역사를 피식민자의 관점에서 재구성하여 전 지구화 시대에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권력의 불균형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이 논문은 욕망의 생성 혹은 욕망함과 욕망의 승화와 정화 그리고 이로 인한 내면적 갈등의 시화(詩化)에 초점을 둔다. 오직 상상으로 가능한 예이츠의 비잔티움은 영원하고 완전한 성도이고 속세의 현실로부터 안전한 안식처이다. 예이츠의 정신적 영원성을 상징하는 황금새는 현실의 모든 세속적 속성들을 거부하는 인공적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이 조형물은 오직 시인의 비전속에서만 존재한다. 영적 순례와 환생의 열망이 강해질수록 시인의 안타까운 욕망은 전복되고 단절된다. 비잔티움은 오직 시인이 욕망을 실현한 이상향으로만 상상되고 가정된다. 결국 비잔티움의 재현은 그 곳으로의 정신적 항해의 실현이 불가능함을 인식하고 있음을 함의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만 계속 발생한다. 비잔티움의 미적 재현은 예이츠의 전복된 욕망을 의미할 뿐이다.
This paper briefly charts the history of excrement as part of the late 20th-century art and explores ways in which excrement functions in the realms of 'High' art. From Piero Manzoni's <Merde d'artiste> to David Hammons' performance <Pissed Off>, excrement has taken a small yet distinctively important part in the development of contemporary art. In an attempt to challenge the hegemony of 'high' art, on the one hand, and resist the commercialization and fetishization of art, on the other, Manzoni allegedly offered his own "shit" preserved in a tin can and sold it at the price of gold of the same weight. Andy Warhol took the legendary Abstract-Expressionist painter Jackson Pollock as the object of parody, simulating Pollock's dripping action by pissing onto the canvas that had been primed with copper-based paint. Warhol's urination produced splashes and stains of iridescent colors just as the patterns on ordinary abstract paintings. In contrast to Pollock's masculine action, Warhol's pissing alludes to the artist's homosexuality. Excrements in art also provoked controversies, debates, and even acts of vandalism against the artworks. The works of Andres Serrano and Chris Ofili infuriated many Christians for the blasphemous use of excrement with religious icons. Politicians engaged in the heated debates on the use of public and national funds in support of some of the 'politically incorrect' contemporary art. In the midst of media sensation and criticisms, these works challenged the conventional understanding of artistic beauty. The preexisting artworks were also targeted. African-american artist Hammons assumed the role of spectator in <Pissed Off> by urinating on Richard Serra's sculpture in the street of New York City. It was an act condemnation levelled at the racist pattern of the way in which large portions of funds and commisions of "public" art tended to promote established 'white' artists, whose work or creative process often failed to reflect the actual public. The use of excrement in art is not unusual in contemporary art practices. With its subversive power, excrement plays an important critical roles in the shaping of contemporary art.
본 논문은 Joyce의 작품, 특히 Ulysses에서 Yeats의 죽음과 순교에 대한 견해를 작가가 어떻게 거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Ulysses는 Yeats의 두개의 극, Countess Cathleen과 Cathleen ni Houlihan 을 연상시키는 많은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Yeats의 Cathleen은 우유 배달하는 할머니로 속화되고 거부된다. 순교하는 애국자는 처음에는 영웅적 패배로 우상시되나, 곧 쉽게 잊혀지고 배반당한다. Bloom과 Stephen은 죽음과 순교를 거부하고 현재의 삶에 집착한다. 카톨릭 출신의 Joyce는 신교 출신의 Yeats와 문예부흥론자들의 순교의 숭배를 신교 지배계층의 역사적 딜레마와, 그들이 정신적으로 영국화(anglicization)되었음에 기인한다고 암시하고 있다. Cathleen의 이미지를 거부함으로써, Joyce는 영국지배자에 의해 만들어진 심리적 한계선을 따르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