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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3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신라사에서 마립간기는 ‘新羅國王’으로 표방되는 지증왕대 이후 신라 사회의 급격한 성 장과 질적 변화를 추동한 시기이다. 특히 마립간기에 본격화된 영역의 확장은 신라 국가 성 장의 중요한 배경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자비·소지마립간 재위기에는 축성 기록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며 이는 당대 신라의 영역 확장 과정을 잘 보여준다. 신라 중앙의 의지와 계획에 따라 축성된 신라성은 신라의 영역을 실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유효한 자료이다. 또한 문헌사료에 기록된 성을 현재 남아 있는 성[城址]과 타당하게 일치시킬 수 있다면 신라의 영 역 확장과 그 운영 방식에 대한 더 구체적인 이해가 가능해진다. 자비·소지마립간기의 축성은 앞선 시기 영남권역을 확보한 신라가 소백산맥 일원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축성 지역은 한강 (최)상류와 소백산맥 서북부 일원 에 집중되어 당대 신라 영역의 북서쪽 경계[北邊]를 반영한다. 각 성은 기본적으로 확대된 영 역의 방어를 위한 목적으로 축성되었으며 서로 가깝게 위치한 성은 긴밀한 관계를 이루며 일 정 권역의 방어체계를 형성한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몇몇 성은 축성 지역 일원을 신라의 지 방으로 운영하는 거점의 역할[地方據點城]을 병행한 것으로 판단되며, 그러한 축성 목적과 역할에 따라 성의 입지와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간의 구성에서 일정한 차이가 나타난다. 5세기 후엽인 신라 자비·소지마립간기 축성의 가장 큰 특징은 石築山城의 본격화이다. 석재를 이용하여 높게 쌓은 체성벽과 이를 보강한 보축성벽, 현문식 성문, 성벽을 돌출시킨 (곡면)치성, 성벽 통과식 수구와 그 안쪽의 집수시설 등 공통적 구조를 갖춘 석축산성은 이 시기에 典型을 이루고 이후의 축성에서 탄력적으로 變容된다. 한편 신라 축성 사업의 원활 한 전개는 축성 지역의 親新羅化를 전제로 가능하다. 축성 지역의 재지세력은 신라 중앙의 축성 의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자기 안전을 보장받고 발전의 동력으로 삼았다. 신라성에 인접한 대단위 고분군의 조영과 중심 고분의 高塚化가 이를 반영한다. 그러나 신라 중앙의 영향력 투사가 점차 심화되면서 지방의 신라 고분군은 각각 특정한 시점에 조영이 중단되며 이는 신라 지방 운영 방식의 질적 변화를 암시한다. 비교적 짧은 시기 동안 여러 지역에서 진행된 축성은 신라의 인적·물적 자원의 관리와 동원 체계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축성과 같은 국가적 사업 의 수행을 위한 대단위 인력 동원은 신라 사회 구성원의 동질감과 정체성 형성의 주요한 계 기가 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당대 신라 축성의 결과인 보은 삼년산성 등 거대 석축산성은 신 라의 확대된 영역과 내적 역량을 과시하는 표상으로서 역사적 기념물의 의미를 함께 갖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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