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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
        2020.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T. S. 엘리엇의 시와 에세이 분석을 통해 그의 글이 담고 있는 반민족주의적 사상을 그가 꿈꾸던 유럽의 문화적 통합과 관련하여 연구한다. 이를 통해 그의 반민족주의는 일종의 확장된 민족주의이며, 그의 이러한 범민족주의는 민족주의의 원초적인 관점과 도구적 관점에 기반하였음을 밝힌다. 엘리엇은 제1차 세계 대전 후 유럽 국가들 간의 전쟁을 강하게 반대했고, 유럽은 평화를 위해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민족주의를 반대한 이유는 민족주의가 유럽의 문화 통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지 민족주의 자체의 논리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따라서 유럽 문화 통일을 주장하는 엘리엇의 반민족주의가 민족주의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는 것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그의 반민족주의는 민족주의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민족 구성원의 “의지”와 민족국가의 형성과 유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통”에 관한 개념을 민족주의와 공유하고 있다. 이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남북통일을 생각함과 동시에 세계 평화를 위해 각 국의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인류는 언제나 과거를 통해 배우기에 한국에서 엘리엇 읽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42.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의 목적은 20세기 영국 모더니즘 최고 시인 엘리엇과 프랑스 상징주의 최고 시인 발레리의 1926-1929년 사이의 관계를 전기비평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주로 『T. S. 엘리엇의 서한집』 3권 (2012)과 4권(2013)에 수록된 서신들에 나타난 『크라이티어리언』 편집인 이자 페이버앤가이어 이사인 엘리엇이 1927년 런던의 리셉션 식장에서 발레리와의 짧은 조우로 불쾌한 감정을 느꼈지만, 발레리의 친구 윌리 엄 맥코즈랜드 스튜어트와 스튜어트의 친구 토마스 맥그리비의 발레리 산문과 운문 번역문 출판에 크라이티어리언출판사 대신에 페이버앤가이어, 호가스출판사, 조나산케이프출판사가 협조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 면서 중재하고 있다. 엘리엇의 서신을 통한 집요한 노력 덕택으로 맥그 리비의 번역본 『레오나르드 다빈치 방법 입문』이 1929년 존 로드커에서, 스튜어트의 번역본 『건축가 에우팔리노스』가 1932년 호가스출판사 가 아닌 옥스퍼드대출판부에서 출간된다. 요컨대, 4년 기간에 걸친 엘리 엇과 발레리 번역가들, 호가스출판사의 레너드 울프 출판인, W. B. 예이츠와 엘리엇의 상호 친구인 토마스 스터지 무어 시인이자 비평가 및 기 타 문인들과의 수많은 영불(英佛) 서한들은 특히 발레리 작품의 세계적인 보급을 위한 영역(英譯) 출판에서 엘리엇과 발레리 이 두 거장들의 신뢰할 만하고 존경스런 우정을 강력히 제시하고 있다.
        43.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의 주요 목적은 T. S. 엘리엇의 비평에세이인「종교와 문학」을 면밀히 점검함으로써 문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그의 견해를 해명하는 것이다, 1935년에 발표된 중요한 이 에세이에서 엘리엇은 자신이 시대를 세속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시대로 진단하며, 동 시대의 신학자인 폴 틸리히의 ‘궁극적 관심’과 주목할 정도로 의미적인 유사성을 지닌 것으로 엘리엇이 ‘근원적 관심’이라고 불렀던 것은 이 시대에는 거의 완전히 잊어져버렸다. 엘리엇은 세속화의 주요 원인으로 오락의 명에 따라 고급문화를 탈구를 이끌고 있는 대중문화의 파과적인 힘을 지적하고 있다. ‘근원적 관심’의 회복을 추구하는 엘리엇은 문학 작품의 윤리적 종교적인 가치를 명확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와 오락에 탐닉하는 일반 사람들에게 ‘근원적 관심’을 파종시키는데 있어서 문학 비평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44.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의 목적은 20세기 영국 모더니즘 최고 시인 엘리엇과 프랑스 상징주의 최고 시인 발레리의 1920-1925년 사이의 관계를 전기비평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주로 『T. S. 엘리엇의 서한집』 1권 (2009)과 2권(2009)에 수록된 서신들에 나타난 『크라이티어리언』 편집인 엘리엇이 발레리의 「뱀」(1922)의 마크 워들 번역시를 출판인 리처드 콥든-샌더슨과 후원자 로더미어 여사의 협조로 1923년 동지(同誌)에 최초로 출판하고, 이어서 워들의 번역시와 엘리엇의「뽈 발레리의 기법 소서(小序)」가 수록된 『뽈 발레리의 뱀』(1924)의 출판에 사무적으로 중재 하고 있다. 엘리엇의 『황무지』(1922)에 대한 발레리의 호평은 발레리의「영혼과 무도(舞蹈): 소크라테스의 대화술」(1921)에 관한 엘리엇의 혹평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찰스 휘블리와 존 헤이워드는 엘리엇과 발레리의 상호 절친한 친구들로서 그들의 존경스런 우정을 강화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요컨대, 6년 기간에 걸친 엘리엇과 발레리의 수많은 영불(英佛) 서한들은 엘리엇과 발레리가 편집인-투고자 관계로부터 예찬할만한 거장들의 국제적인 우정에 이르기까지 상호 강력한 영향력을 시사하고 있다.
        45.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운명에 대한 인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문학작품에서 다루어 졌다. 특히 T. S.엘리엇의 대표적인 작품인 『황무지』와 『네 사중주』에는 이러한 운명에 대한 인식이 매우 통찰력 있게 나타나 있다. 운명에 대 한 인식은 단순히 인간 삶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어떤 사건이나 비극적인 인연이라기보다는 매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차원으로 추상화된 삶과 운명에 대한 철학적인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의 작품을 운명에 대한 인식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기존 엘리엇의 작품에 대한 철학적, 종교적 성찰의 연장된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이 자신의 중요 작품을 통해 간헐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운명에 대한 인식은 상당부분 명리학적 운명의 인식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으며, 이러한 운명에 대한 인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사실은 『황무지』와 『네 사중주』 에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운명과 관련된 이미지, 상징, 그리고 부분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주제의식에서 확인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엘리엇이 고찰하고 있는 인간 운명에 대한 인식은 많은 측면에서 명리학적인 운명의 인식과 비교될 수 있다.
        46.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인류 보편적인 관계형성이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는지를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을 기본으로 T. S. 엘리엇의 작품 『가족의 재회』에 서 탐색한다. 특히 본 연구는 『가족의 재회』의 현 시대에 인간 사회뿐 아니라 신과 관계를 형성하려는 이들에게 어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메타노이아와 아가페의 상호관계를 통해 규명하고자 한다. 엘리엇의 작품은 많은 그리스도적 전통을 제 시하는 데, 특히 초기 그리스도교의 파레시아 개념은 가족의 재회에 드러난 원죄인식과 인간구원의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특히 개심의 메타노이아와 신의 은총인 아가페의 개념은 본 작품의 해리와 아가사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본 연구는 개인과 외부의 관계의 상호성을 바탕으로, 비록 개인의 의지만으로 관계를 회복할 수 없지만, 개인이 사 랑을 실천하는 것이 외부의 은총과 관심과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관계회복은 자기방기와 같은 외부세계에 대한 열린 태도와 개인의 속죄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47.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S. 엘리엇은 20세기 현대 문학 이론과 비평의 큰 분기점이 된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몰개성화 과정을 통한 유기적으로 통합된 문학적 전통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론을 바탕으로 그는 『D. H. 로렌스와 인간 존재』라는 책의 서문에서, 로렌스가 작가로서의 자질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 대해 변덕스럽고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혹평한다. 즉 로렌스는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로 인한 “무지와 편견”으 로 인해서 작가로서의 임무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엘리엇의 로렌스 비판과는 대조적으로, F. R. 리비스와 레이몬드 윌리엄스는 로렌스가 당시 학계의 주류를 이 루던 교육의 편협함에서 벗어나 오히려 탁월한 내면적 통찰력과 “우월한 지성”으로써, 당시 영국의 사회와 앞으로의 미래 그리고 그 이면의 본질을 포착하여 작품 속에 훌륭히 형상화하고 있다고 극찬한다. 본 논문은 이들의 의견에 공감하면서, 엘리엇의 「전통과 개인의 재능」의 문학적 전통과 몰개성화 이론을 바탕으로 엘리엇과 로렌스의 사상과 문학 이론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조금 더 심도 있게 고찰하고자 한다.
        48.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논증한 에피스테메와 “인간의 사 라짐”에 근거하여 모더니즘과 엘리엇의 시의 본질을 재평가하고자 한다. 에피스테메는 역사적이지만 비-시간적인 선험으로서, 어떤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담론들이 가능한 조건으로서 작동한다.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던 근대의 에피스테메 내에서 인간이란 개념은 생물학, 경제학과 언어학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개념은 철학의 영구 적인 주제가 아니라, 근대 과학의 발전에 기반을 둔 역사적인 해설이거나 역사적으로 구성된 허구에 불과하다. 푸코는 근대의 에피스테메가 갑자기 변화하면, 인간이란 개념도 쓸모없어지며, 따라서 근대 주체인 인간도 사라진다고 보았다. 본 논문은 푸코의 에피스테메와 근대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론에 근거하여, 모더니즘을 “새롭게 하기”라거나 “재현의 위기”라거나 “내면 탐구”라는 문학적 운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 라 새로운 시대의 에피스테메이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엘리엇의 시는 근대 주체인 인간의 죽음과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 을 밝히고자 한다.
        49.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S. 엘리엇의 네 사중주는 4 편의 시들로 구성돼 있으며, 각 시의 제목은 특정한 장소의 이름이다-「번트 노튼」(“Burnt Norton”), 「이스트 코우커」(“East Coker”), 「드라이 샐베이지즈」(“The Dry Salvages”) 그리고 「리틀 기딩」(“Little Gidding”). 본고는 네 개 제목들의 첫 글자들을 순서대로 결합하면 ‘B-E-TH-L’ 또는 ‘B-E-THE-L’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이는 ‘Bethlehem’ or ‘Bethel’ 이라는 낱말을 이루게 된다는 가설을 제안 한다. 히브리어로 ‘beth’는 ‘집’을 뜻하므로 ‘Bethlehem’은 ‘빵의 집’을, ‘Bethel’은 ‘하나님의 집’을 의미한다. 본고는 엘리엇의 집필과정을 상세히 탐구함으로써 이 가정을 뒷받침해줄 근거를 찾아간다. 본고는 이와 같은 시인의 은밀히 감춰진 의도에 대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네 사중주』를 신이 인간이 된 역사적인 사건, 즉 성육화가 일어났던 독특한 지상의 공간인 한 특별한 ‘집,’ 즉 베들레헴을 향해가는 여정으로 이해하는 시도를 한다. 특히 메를로-퐁티와 같은 현대 현상학자들에 의해 전개된 공간에 대한 이론을 원용하여, 이 작품을 현상학적인 관점에서 공간적 경험으로서 분석한다. 『네 사중주』의 순례자에게 공간은 실존적이며 존재는 공간적이다. 베들레헴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위해 기억될 수 있도록 인류에게 허락된 유일한 장소이다.
        50.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의 목적은 20세기 모더니즘 최고 시인 엘리엇과 모더니즘 최고 소설가 조이스의 1923-1927년 사이의 관계를 전기비평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주로 『T. S. 엘리엇의 서한집』 2권(2009)과 3권(2012), 『제임스 조이스의 서한집』 1권(1957)과 3권(1966)에 수록된 서신들에 나타난 크라이티어리언 편집인 엘리엇이 조지 세인츠베리에 게 조이스의 『율리시즈』 비평문 원고 청탁, 『율리시즈』에 관한 엘리엇 의 비평, 조이스의 눈수술과 가족 숙소에 관한 엘리엇의 관심, 조이스의 『황무지』 패로디시, 조이스의 엘리엇 부부에 관한 안부 등을 탐색하고 있다. 아울러 엘리엇이 「『율리시즈』, 질서와 신화」(1923)에서 리처드 알딩턴의 『율리시즈』 혹평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와 『율리시즈』의 병행 구조의 “신화적 기법”의 수월성 제시, 엘리엇의 사무엘 로스의 『율리시즈』 해적판과 자신 시의 무단 출간에 대한 비판과 공방(攻防), 실비아 비치 주도 조이스의 로스 소송 일환의 국제적 항의문에 엘리엇의 서명 등을 심도 있게 천착하고 있다. 요컨대, 5년 기간에 걸친 엘리엇과 조이스 및 파운드의 수많은 서한들은 엘리엇과 조이스가 친밀한 관계에서 『율리시즈』 비판과 불법적인 판권 침해에 대해 공동 대처를 모색하는 모더니스트 문학 거장들의 협조 관계로 이르기까 지 상호 강력한 영향력을 시사하고 있다.
        51.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눈과 눈물의 존재론적 의미를 깊이 있게 파고들었던 앤드 류 마블과 T. S. 엘리엇의 시들을 면밀히 검토하고자 한다. 논문의 전반부는 이의제가 앤드류 마블의 눈과 눈물에 시적으로 어떻게 극화되 었는지를 해명한다. 이 시에서 눈은 자아중심적인 주체와 인식론적인 시각이 높이 평가되는 존재론적인 영역이다. ‘눈/나의 정권’에 비판적인 마블은 이를 해체하는 신체적인 증표이자 알레고리적인 아이콘으로 눈 물을 전경화한다. 마블에게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단지 이타성을 지향하는 수행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절대타자를 향하는 하나의 영적 기도이다. 이 논문의 후반부는 눈과 눈물의 존재론이 다른 형태로 극적으로 제시된 T. S. 엘리엇의 눈물 흘리며 내가 전에 봤던 눈과 텅 빈 사람들 을 꼼꼼히 분석한다. 엘리엇의 시들은 ‘눈/나’의 헤게모니적인 권력에 대해 시인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등재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시에서 죽음의 다른 왕국으로 묘사된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절절한 염원과 자신의 영적 구원에 대한 뿌리 깊은 회의 사이에서 끊임 없이 동요하는 엘리엇의 페르소나는 허무주의자이며, 그가 영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절대타자에게만 시선이 늘 고정된 “부릅뜬 눈”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기독교로 개종하기 2년 전에 쓴 이 시는 시인 자신의 죽음의 왕국에는 이 눈이 부재하다는 고통스러운 자기고백을 담고 있다.
        52.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의 목적은 1923-1925년 사이에서 모더니즘의 최고 시인 엘리 엇과 보티시즘의 창시자이자 소설가-화가 윈덤 루이스의 관계를 천착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T. S. 엘리엇의 서한집 2: 1923-1925년』(2009)과 『윈덤 루이스의 서한집』(1963)에 수록된 다양한 서신들을 집중적으로 탐색하고, 엘리엇이 1924-1925년 사이에 편찬한 『크라이티어리언』지에 게재된 루이스의 보티시즘 풍자소설 『신의 원숭이들』(1930)의 초기 원고들인 자그레우스씨와 분열의 인간과 신의 원숭이들 , 2편의 논고 예술 연대기 및 3편 서평들의 수록 과정과 평가를 조명하고 있다. 엘리엇과 루이스의 가까운 관계는 루이스가 신의 원숭이들에서 풍자한 시드니와 바이올렛 쉬프 부부, 시트웰 3남매 작가들인 에디스, 오스버트, 사쉐비얼 시트웰, 블룸즈베리 그룹의 창립자-작가 리턴 스트레이치 와의 애증병존적 관계와 병치되어 있다. 한편, 그들의 불안한 관계와 다툼은 너무 길어서 『크라이티어리언』지에 수록할 수 없는 루이스의 2만 단어 원고 완전한 행동 에 관한 논의의 미해결과 원고료 문제로 발생 한다. 요컨대, 3년 기간에 걸쳐 엘리엇과 루이스가 주고받은 서한과 루 이스의 기고문은 집중적으로 그들의 강력한 영향력의 상호 작용과 상큼한 우정에서 시작하여 적대적인 관계에 이르는 양면적인 관계를 시사하고 있다.
        53.
        2018.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병치기법은 1920년 출판된 엘리엇의 시집 『시』에서 가장 혁신적이며 전형적인 몰개성 기법 중의 하나이다. 1917년에 출판된 『프루프록과 기타관찰』의 시가 주로 지배적인 하나의 관점을 보여주며 극적인 기법을 더 원용했던 반면, 복잡한 목소리를 보여주는 『시』는 이미지나 상징 같은 암시적 기법에 더 의존한다. 형이상학파의 위트와 상징주의자의 상징, 조이스의 소설적 방법 등이 동시적으로 적용되면서 암시기법이 더욱 복잡해짐에 따라 의미의 명징성을 해하지 않고자 엘리엇은 『시』에서 인칭대명사의 사용을 급격히 줄이고 병치기법을 전면에 내세운다. 엘리엇의 독자적인 ‘신화적 방법’은 병치를 더욱 엄격하게 적용하여 순식간에 패러독스를 불러일으키는 암시기법에 다름 아니다. 이미지뿐만 아니라 보이스, 레지스터, 배경, 시간, 언어적 요소, 내러티브 프레임, 그리고 문법구조를 망라하는 엘리엇의 병치기법은 과감하게 논리와 코멘트를 생략하고 이질적인 것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가 『시』에 수록된 사행시에서 구하고자 한 몰개성의 핵심 자질을 가능케 한 기법이다.
        54.
        2018.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개종 이후 T. S. 엘리엇은 문학 평가에 있어 엄격한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면을 강조한다. 󰡔낯선 신을 찾아서: 현대 이단의 입문서󰡕에서 엘리엇은 도덕가로서 ‘전통,’ ‘정통,’ ‘이단’ 그리고 ‘모독’이란 비평의 개념을 전개시키면서 현대 문학의 효용성을 평가한다. 토마스 하디는 불가지론자, 무신론자로서 여러 시를 통해 하나님을 부정하고 구원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표현한다. 엘리엇은 전통적인 종교적 신앙인 기독교 정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을 강조하고, 자유주의적 윤리나 종교, 퇴폐적인 감상주의, 기괴함 그리고 악마적인 요소를 시에 드러내며 자신만의 ‘낯선 신’이나 신화를 찾는 하디를 󰡔낯선 신을 찾아서󰡕에서 ‘이단’으로 공격한다. 본고에서는 하디의 시를 통해 “믿음의 징조”인 ‘모독’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 그의 이단성을 살펴본다.
        55.
        2018.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전통의 개념과 몰개성시론을 주창한 T. S. 엘리엇의 「전통과 개인의 재능」은 후속 문학이론, 문화이론에 의해 광범위하게 논의되고 비판을 받아왔다. 이러한 획기적인 비평문에 대한 다양한 반응과 반박 중에 여성 시인들의 직접적인 반응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비숍이 대학시절에 작성한 「소설을 위한 차원들」이라는 제목의 글에 초점을 맞추어 비숍이 현저히 다른 수사적 장치로써, 엘리엇의 “현존하는 기념비들”에 대한 개념과 전통관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본다. 비숍은 「소설을 위한 차원들」에서 「엘리엇의 전통과 개인의 재능」을 인용, 재인용하면서 소설 창작의 진행, 소설 내에서의 행위의 지속적인 재조정, 질서를 형성하는 현존하는 기념비들에 대해 논의한다. 본고는 이 두 편의 비평문과 엘리엇의 「시의 현대적 경향」과 함께, 기념비와 시에 대한 두 시인의 생각을 담은 작품들을 비교한다. 엘리엇의 󰡔황무지󰡕는 세계대전 이후의 파편들로부터 문학과 문화의 기념비를 구축하고, 시인 자신의 일차적 경험으로부터 거리를 둠으로써 작품을 몰개성적으로 만들어보려는 시도이다. 반면 비숍의 「기념비」와 「시」는 초월과 정통, 주제의 종결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시인의 개인적 삶, 기억, 가족의 역사로부터 도피하지 않는 작품이다.
        56.
        2018.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의 목적은 1914-1922년 사이에서 모더니즘의 최고 시인 엘리엇과 보티시즘의 창시자이자 소설가-화가 윈덤 루이스의 관계를 천착하는 것이다. 다빈치에 비견된다고 당대에 호평 받은 루이스의 걸작이 논 란의 여지없이 <T. S. 엘리엇>(1938) 초상화인 것은 모더니즘 두 작가의 친밀한 관계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논문은 『T. S. 엘리엇의 서한집 1: 1898-1922년』(2009)과 『루이스의 서한집』(1963)에 수록된 다양한 서신들을 집중적으로 탐색하고, 루이스가 편집한 『블라스트』지와 엘리엇이 편찬한 『크라이티어리언』지, 나아가서 보티시즘과 모더니즘까지 조명하고 있다. 아울러 루이스의 보티시즘 소설 『타르』 (1918)의 엘리엇 서평인 「타르」(1918)와 모더니즘의 걸작 『황무지』 (1922)에서의 짧은 원용은 두 작가의 친밀한 상호 관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 연구는 『T. S. 엘리엇의 서한집 2: 1923-1925년』과 『루이스의 서한집』을 지속적으로 연구함으로써 엘리엇과 루이스의 관계를 재조명하 게 되는 초석이 될 것이다.
        57.
        2018.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네 사중주』에 대한 기독교적 평가의 내용과 엘리엇이 묘사한 “사랑”의 의미를 고찰한 것이다. 먼저 대다수의 평자들이 『네 사 중주』의 중심에는 기독교적 사고가 내포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묘사하면서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게 되면 무시간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내용이 『네 사중주』 전체의 핵심 내용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엘리엇이 묘사하는 “사랑” 역시 기독교적 논리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본 연구를 통하여 알 수 있었다. 부연하면 사랑은 만물을 이동 또는 변화시키는 원동력이지만 개인적 욕구나 이기심이 배제되어야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가 『네 사중주』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58.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성의 시대’에 기독교의 진정성을 매우 설득력 있게 옹호한 위대한 사상가라고 블레즈 파스칼을 칭송하고 있는 T. S. 엘리엇의 「파스칼의 팡세 」(1931)를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이성과 감수성, 과학과 신앙을 융합하고 있는 파스칼의 사유의 독창성의 이해를 위해 엘리엇의 짧지만 핵심적인 에세이가 지닌 중요성을 탐구하는 것이 본 논문의 주요 목적이다. 본 논문의 또 다른 목적은 파스칼에 대한 엘리엇의 강한 영적 친화감을 깊이 파고듦으로써 엘리엇이 자신의 글들에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그의 기독교 사상의 일부 ‘잔상’들을 포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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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고는 엘리엇의 시 작품을 구성하는 방대한 인유들이 가지는 의미를 그의 초기산문 「전통과 개인의 재능」과 후기작 「네 사중주」에 드러나는 엘리엇의 역사관과 전통관에 비추어 사유해 보고자 한다. 엘리엇의 1920년 시집에 실린 「베데카를 든 버뱅크」와 「영원의 속삭임」, 「나이팅 게일에 에워싸인 스위니」에 도입된 인유들을 상세히 분석해보면서 엘리엇의 인유가 갖는 독창적인 가치를 확인하고자 한다. 엘리엇은 현대의 예술가로서 과거의 예술, 즉 커다란 문학적 전통의 단편들을 시 본문에 도입함으로써 항구성과 친밀한 접촉을 이루고 궁극적으로 예술적 초월성과 완전성에 다가가고자 시 본문에 고전에 대한 인유들과 인용들을 풍부하게 활용한다. 나아가 그는 시인의 정신과 철학으로써 이질적인 고전의 파편들에 새로운 유기적 통일성을 부여하려 한다. 엘리엇의 고전에 대한 인유는 과거의 예술작품이 지닌 문화적 고매함을 부각시키면서도 과거의 예술작품을 현대적인 배경 안에 배치시킴으로써 고전의 단편들이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도록 하고, 현재의 상황과 사건이 신선한 관점에서 사유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패러디와 다르다. 또한 현대적 텍스트에 과거의 ‘이미지’가 아닌 ‘진정한 과거’를, 즉 전통의 이미지가 아니라 전통의 ‘실제,’ 전통의 ‘정수’를 진지하게 도입하려한다는 점에서 패스티쉬와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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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모더니스트들처럼 엘리엇 역시 과학에 대해 이중성을 드러낸다. 한편으로 그가 이미지즘을 시에 적용할 때 그는 과학적 리얼리즘 특히 원자론적 리얼리즘을 동반하는 편이다. 그리고 과학적 객관성이 감정주의를 거부하는 편이기 때문에 엘리엇은 종종 과학적 객관성이 끊임없는 자아의 희생을 요구하는 자신의 몰개성이론과 통하는 점이 있다고 여긴다. 더구나 그의 시에서 시어를 가다듬거나 리얼리스틱한 장면을 구축 하려고 할 때 즉 원자적 사실들이 원자적 문장들과 상응하도록 하는 작업을 할 때 엘리엇은 과학의 분석적 방법을 채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과학의 만용 즉 사회 과학이나 인문학 등과 같은 다른 분야에 그 세력을 확대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엘리엇은 과학이 자기 분야에서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보편적 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장 깊은 진리를 획득하는 데는 불충분하다고 믿는다. 더구나 과학적 객관성은 부분적으로 중립성을 얻을 수 있지만 자칫 과학이 조건적인 조직화나 압박적인 체계화에 경도된다면 행동주의처럼 현실을 경직시킬 수도 있다. 반면에 예술적 강렬함이나 예술적인 도취는 혼란한 관계에서 완전한 이탈을 이룰 수 있고 메마른 현실들을 재생시킬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진화론에 의존하는 베르그송적인 생기론을 엘리엇이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생기론 역시 순수 운동이 무모한 행동주의로 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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