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T.S.엘리엇연구 KCI 등재 Journal of the T. S. Eliot Society of Korea

권호리스트/논문검색
이 간행물 논문 검색

권호

제27권 제3호 (2017년 12월) 11

1.
2017.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엘리엇의 『네 사중주』 는 시간과 영원을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다. 이러한 주제는 인간이 현상의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 접하게 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항이지만 막상 그 의미를 정의하기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엘리엇은 『네 사중주』 에서 구속과 고통이 있는 시간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삶과, 자유와 행복이 있는 영원한 삶을 대비적으로 나타내지만, 궁극적으로는 두 극단을 하나로 일치시키면서 시간 속에서 영원을 발견하는 지혜를 가리킨다. 이러한 지혜는 시간과 영원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며, 시인은 “정점,” “한겨울의 봄,” “영의 여름”이라는 시적 객관적 상관물과 상징을 고안하여 그 의미를 함축시킨다. 시인의 궁극 적 지혜의 가르침은 모든 다양성이 하나로 통합되는 원리를 찾는 것이며, 그것은 영원과 시간의 상징인 불과 장미가 하나로 합쳐져 영광의 불 매듭이 되는 것이다.
2.
2017.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엘리엇의 시 작품을 구성하는 방대한 인유들이 가지는 의미를 그의 초기산문 「전통과 개인의 재능」과 후기작 「네 사중주」에 드러나는 엘리엇의 역사관과 전통관에 비추어 사유해 보고자 한다. 엘리엇의 1920년 시집에 실린 「베데카를 든 버뱅크」와 「영원의 속삭임」, 「나이팅 게일에 에워싸인 스위니」에 도입된 인유들을 상세히 분석해보면서 엘리엇의 인유가 갖는 독창적인 가치를 확인하고자 한다. 엘리엇은 현대의 예술가로서 과거의 예술, 즉 커다란 문학적 전통의 단편들을 시 본문에 도입함으로써 항구성과 친밀한 접촉을 이루고 궁극적으로 예술적 초월성과 완전성에 다가가고자 시 본문에 고전에 대한 인유들과 인용들을 풍부하게 활용한다. 나아가 그는 시인의 정신과 철학으로써 이질적인 고전의 파편들에 새로운 유기적 통일성을 부여하려 한다. 엘리엇의 고전에 대한 인유는 과거의 예술작품이 지닌 문화적 고매함을 부각시키면서도 과거의 예술작품을 현대적인 배경 안에 배치시킴으로써 고전의 단편들이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도록 하고, 현재의 상황과 사건이 신선한 관점에서 사유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패러디와 다르다. 또한 현대적 텍스트에 과거의 ‘이미지’가 아닌 ‘진정한 과거’를, 즉 전통의 이미지가 아니라 전통의 ‘실제,’ 전통의 ‘정수’를 진지하게 도입하려한다는 점에서 패스티쉬와도 다르다.
3.
2017.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S. 엘리엇 시의 텍스트를 이루는 구절들은 여러 겹의 다른 목소리들로 중첩되어 그 두께가 두껍다. 『재의 수요일』도 예외는 아니다. 그 목소리들은 단테, 셰익스피어, 종교의 경전 등 역사적 맥락에서뿐만 아 니라 그의 내면에서 온 메시지들이다. 텍스트의 화자이면서 청자인 엘리엇은 40일간의 사순절 첫날인 재의 수요일에 이 목소리들과 함께 내면여행을 시작한다. 돌이킴, 성녀와의 만남과 육의 죽음, 어둠 속 그림자와의 대면, 장미정원에서 성녀와 합일, 말씀과의 합일, 새로운 차원의 돌이킴 등 여섯 단계의 내면 여행은 결국 하느님과의 합일을 통한 성스러움을 이루는 성화과정이다. 이 여행은 또한 분석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개성화과정이기도 하다. 개성화과정은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해가는 과정이다. 의식세계의 자아는 무의식에서 보내온 꿈이나 적극적 상상을 통해 무의식세계의 원형들, 즉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등과 대면 하고 화해하여 최종적으로 정신의 총합이자 중심인 자기원형과 합일하는 것이다. 엘리엇의 성화과정을 개성화과정과 병치하여 읽어 보면, 그가 왜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 앵글로 가톨릭교로 개종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 핵심적 이유는 그의 영적 내면여행의 안내자인 아니마, 즉 성녀의 존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4.
2017.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네 사중주』 와 기독교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연구는 특히 이 작품 전체의 주제를 포괄하고 있는 두 종류의 제사만이 담고 있는 독특한 특성에 대해서 고찰해 보았다. 그리고 그 의미가 네 사중주 전체에 어떻게 삼투되었는가를 조명했다. 제사가 중심을 잃은 현대인의 생활상에 대한 묘사를 나타내듯 엘리엇은 네 사중주 전체의 주제를 중심에서 이탈한 현대인들의 바른 중심 찾기로 일관하고 있다. 그 방법이 하나님과 완벽한 조화를 형성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 본 연구의 결과이다.
5.
2017.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성의 시대’에 기독교의 진정성을 매우 설득력 있게 옹호한 위대한 사상가라고 블레즈 파스칼을 칭송하고 있는 T. S. 엘리엇의 「파스칼의 팡세 」(1931)를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이성과 감수성, 과학과 신앙을 융합하고 있는 파스칼의 사유의 독창성의 이해를 위해 엘리엇의 짧지만 핵심적인 에세이가 지닌 중요성을 탐구하는 것이 본 논문의 주요 목적이다. 본 논문의 또 다른 목적은 파스칼에 대한 엘리엇의 강한 영적 친화감을 깊이 파고듦으로써 엘리엇이 자신의 글들에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그의 기독교 사상의 일부 ‘잔상’들을 포착하는 것이다.
6.
2017.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에서 나타나는 시적 화자의 불안의 기분은 엘리엇의 초기시에 보여주는 다른 여러 감정들처럼 현대인들의 실존에 대한 이해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본 논문에서는 시적 화자의 불안의 감정을 하이데거의 초기 사상에서 비중 있게 다뤄진 불안의 의미와 함께 분석함으로써, 불안의 실존론적 의미에 주목하고자 한다. 실존론적 의미에서 프루프록의 불안은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를 깨 닫게 되는 기분이다. 불안은 자기를 상실한 채 비본래적으로 살아가는 시적 화자에게, 섬뜩함으로부터 존재를 알려오며 양심의 목소리를 통해 본래적인 삶의 가능성을 개시하는 기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은 프루프록의 불안을 통해 어둡고 절망적인 현대사회를 진단하기 보다는 불안을 통해 오히려 자기를 상실한 현대인들의 실존 회복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불안은 하이데거의 초기 사상에 해당하는 존재와 시간과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에서 “무”와의 관련성을 가지고 깊이 있게 사유되고 있다. 불안과 불안이 드러내는 무의 성격은 「프루프록」에서 시적화자의 불안과 불안이 가져다주는 “압도적인 문제” 를 해석하는 바탕이 된다.
7.
2017.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의 목적은 모더니즘의 최초시라고 평가받고 있는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1915)에 나타난 엘리엇의 다양한 모더니즘 기교를 천착하는 것이다. 보들레르의 모더니티 개념에서 구축된 모더니즘의 대 표 시인 엘리엇의 시적 기교는 인간의 자아를 성적 본능인 이드, 자아, 초자아로 구분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제임스의 “의식의 흐름”의 영향으로 낭만주의나 빅토리아조 시인들의 기교와 확연히 다르다. 엘리엇은 신중하고 우유부단한 화자 프루프록의 내적 독백, 즉 백일몽을 통하여 무의식 속에서 관능적인 여인들과의 조우 단절을 묘사함으로써 모더니즘의 한 주제인 도시 생활 속의 “소외”(疏外)를 표출하고 있다. 아 울러 시인은 베르그송 시간관의 영향으로 기계적인 “시계 시간”보다 프루프록 의식의 “심리 시간”을 수월하게 표출하고 있다. 또한 엘리엇의 모더니즘 기교는 독특한 은유, 직유, 환유, 상징 그리고 형이상시인들의 기상(奇想)보다 더 복잡한 기상의 사용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화자의 망설이는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을 투사하고 있는 엘리엇의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는 확실히 그의 전통적인 하버드 습작시와 모더니즘 대표시 황무지 사이의 간극을 연결하는 혁신적인 모더니즘 최초의 시이다.
8.
2017.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엘리엇의 철학적 개념으로서 “감각으로 느끼는 온전한 경험의 세상” (A Felt Whole)은 그의 초기 몰개성시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 한데, 이는 전통론, 객관적 상관물론, 감수성의 분열론, 그리고 신화적 방식에 이르기까지 엘리엇의 문학적 개념과 테크닉의 이론적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개념은 엘리엇의 박사논문 주제인 독일 철학자, F. H. 브래들리에게서 빌려온 것으로서 그가 한 일은 브래들리의 철학을 미학적 창조과정에 적용한 것으로, 감정과 사상이라는 우리 경험의 상반된 두 요소를 결합시키기 위해서였다. 시인비평가로서 엘리엇의 초창기 경력은 이 감정과 사상을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융합하며 초월하려는 미학적 경험의 추구로 점철된다. 그 추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 세상의 경험을 하나의 온전한 총체로서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자아의 창조인데, 이는 바로 브래들리가 그의 철학에서 주장한 원초의 경험세계 즉, “감각으로 느끼는 온전한 경험의 세상”을 창조하려는 것이다.
9.
2017.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낭만주의와 모더니즘시에서 “고독”이라는 주제는 동시에 나타나지만 그 성격을 달리한다. 윌리엄 워즈워드가 그의 작품 「외로운 추수꾼」과 「나는 구름처럼 외로이 배회했네」에서 드러내는 “고독”의 의미는 혼자 만의 호젓함을 내포하지만 T. S. 엘리엇의 작품 황무지 ,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와 「바람부는 날의 광시곡」에서 나타나는 고독은 도시의 풍경에서 비롯된 “소외”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시인들의 시학에 근거하여 워즈워드와 엘리엇의 작품들 속에서 낮에 경험한 자연의 모습과 밤에 겪는 도시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어떻게 “고독”과 “소외”로 구분되어지는지를 증명해 본다. 낭만주의 “고독”은 관찰과 명상을 통해서 얻어지지만 도시환경에서 발생하는 “소외”는 도시인을 방황하게 만든다. 그리고 본 논문은 엘리엇의 “몰개성성”과 “통합적 감수성”에 기반을 두어 어떻게 인간소외가 불안정한 정신과 육체적 불안정을 야기 시키고 마침내 공허함과 무기력을 낳게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10.
2017.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제임스 톰슨은 빅토리아 시대 시인으로서, 『두려운 밤』의 도시를 발표했는데, 『황무지』와 『두려운 밤』의 도시는 그 어조와 세계관 그리고 멜랑콜리적인 요소의 연관성으로 볼 때, 엘리엇은 톰슨의 작품을 염두에 두고 『황무지』를 집필한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 엘리엇이 강의했던 내용 중에 제임스 톰슨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엘리엇이 처음 톰슨을 읽었던 시기가 비교적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톰슨의 작품이 엘리엇의 문학세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바탕이 되었을 것 이다. 멜랑콜리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도상학적 이미지와 상징 그리고 전형적인 상실과 암울함 또는 희망과 구원에 대한 좌절 등이 두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황무지』는 『두려운 밤의 도시』가 차용하고 있는 상당부분의 멜랑콜리적인 요소들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작품의 중요한 인유로서 이용되고 있는 단테를 비롯하여, 다양한 중세회화의 도상들은 엘리엇의 『황무지』가 톰슨이 묘사하려고 했던 멜랑콜리적인 세계, 혹은 도시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1.
2017.12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많은 모더니스트들처럼 엘리엇 역시 과학에 대해 이중성을 드러낸다. 한편으로 그가 이미지즘을 시에 적용할 때 그는 과학적 리얼리즘 특히 원자론적 리얼리즘을 동반하는 편이다. 그리고 과학적 객관성이 감정주의를 거부하는 편이기 때문에 엘리엇은 종종 과학적 객관성이 끊임없는 자아의 희생을 요구하는 자신의 몰개성이론과 통하는 점이 있다고 여긴다. 더구나 그의 시에서 시어를 가다듬거나 리얼리스틱한 장면을 구축 하려고 할 때 즉 원자적 사실들이 원자적 문장들과 상응하도록 하는 작업을 할 때 엘리엇은 과학의 분석적 방법을 채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과학의 만용 즉 사회 과학이나 인문학 등과 같은 다른 분야에 그 세력을 확대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엘리엇은 과학이 자기 분야에서는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보편적 지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장 깊은 진리를 획득하는 데는 불충분하다고 믿는다. 더구나 과학적 객관성은 부분적으로 중립성을 얻을 수 있지만 자칫 과학이 조건적인 조직화나 압박적인 체계화에 경도된다면 행동주의처럼 현실을 경직시킬 수도 있다. 반면에 예술적 강렬함이나 예술적인 도취는 혼란한 관계에서 완전한 이탈을 이룰 수 있고 메마른 현실들을 재생시킬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진화론에 의존하는 베르그송적인 생기론을 엘리엇이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생기론 역시 순수 운동이 무모한 행동주의로 타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