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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엘리엇연구 KCI 등재 Journal of the T. S. Eliot Society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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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

제29권 제1호 (2019년 4월) 8

1.
2019.04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논증한 에피스테메와 “인간의 사 라짐”에 근거하여 모더니즘과 엘리엇의 시의 본질을 재평가하고자 한다. 에피스테메는 역사적이지만 비-시간적인 선험으로서, 어떤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담론들이 가능한 조건으로서 작동한다.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던 근대의 에피스테메 내에서 인간이란 개념은 생물학, 경제학과 언어학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개념은 철학의 영구 적인 주제가 아니라, 근대 과학의 발전에 기반을 둔 역사적인 해설이거나 역사적으로 구성된 허구에 불과하다. 푸코는 근대의 에피스테메가 갑자기 변화하면, 인간이란 개념도 쓸모없어지며, 따라서 근대 주체인 인간도 사라진다고 보았다. 본 논문은 푸코의 에피스테메와 근대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론에 근거하여, 모더니즘을 “새롭게 하기”라거나 “재현의 위기”라거나 “내면 탐구”라는 문학적 운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 라 새로운 시대의 에피스테메이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엘리엇의 시는 근대 주체인 인간의 죽음과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 을 밝히고자 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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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S. 엘리엇은 20세기 현대 문학 이론과 비평의 큰 분기점이 된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몰개성화 과정을 통한 유기적으로 통합된 문학적 전통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론을 바탕으로 그는 『D. H. 로렌스와 인간 존재』라는 책의 서문에서, 로렌스가 작가로서의 자질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 대해 변덕스럽고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혹평한다. 즉 로렌스는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로 인한 “무지와 편견”으 로 인해서 작가로서의 임무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엘리엇의 로렌스 비판과는 대조적으로, F. R. 리비스와 레이몬드 윌리엄스는 로렌스가 당시 학계의 주류를 이 루던 교육의 편협함에서 벗어나 오히려 탁월한 내면적 통찰력과 “우월한 지성”으로써, 당시 영국의 사회와 앞으로의 미래 그리고 그 이면의 본질을 포착하여 작품 속에 훌륭히 형상화하고 있다고 극찬한다. 본 논문은 이들의 의견에 공감하면서, 엘리엇의 「전통과 개인의 재능」의 문학적 전통과 몰개성화 이론을 바탕으로 엘리엇과 로렌스의 사상과 문학 이론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조금 더 심도 있게 고찰하고자 한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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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인류 보편적인 관계형성이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는지를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을 기본으로 T. S. 엘리엇의 작품 『가족의 재회』에 서 탐색한다. 특히 본 연구는 『가족의 재회』의 현 시대에 인간 사회뿐 아니라 신과 관계를 형성하려는 이들에게 어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메타노이아와 아가페의 상호관계를 통해 규명하고자 한다. 엘리엇의 작품은 많은 그리스도적 전통을 제 시하는 데, 특히 초기 그리스도교의 파레시아 개념은 가족의 재회에 드러난 원죄인식과 인간구원의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특히 개심의 메타노이아와 신의 은총인 아가페의 개념은 본 작품의 해리와 아가사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본 연구는 개인과 외부의 관계의 상호성을 바탕으로, 비록 개인의 의지만으로 관계를 회복할 수 없지만, 개인이 사 랑을 실천하는 것이 외부의 은총과 관심과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관계회복은 자기방기와 같은 외부세계에 대한 열린 태도와 개인의 속죄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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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에 대한 인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문학작품에서 다루어 졌다. 특히 T. S.엘리엇의 대표적인 작품인 『황무지』와 『네 사중주』에는 이러한 운명에 대한 인식이 매우 통찰력 있게 나타나 있다. 운명에 대 한 인식은 단순히 인간 삶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어떤 사건이나 비극적인 인연이라기보다는 매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차원으로 추상화된 삶과 운명에 대한 철학적인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의 작품을 운명에 대한 인식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기존 엘리엇의 작품에 대한 철학적, 종교적 성찰의 연장된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이 자신의 중요 작품을 통해 간헐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운명에 대한 인식은 상당부분 명리학적 운명의 인식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으며, 이러한 운명에 대한 인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사실은 『황무지』와 『네 사중주』 에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운명과 관련된 이미지, 상징, 그리고 부분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주제의식에서 확인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엘리엇이 고찰하고 있는 인간 운명에 대한 인식은 많은 측면에서 명리학적인 운명의 인식과 비교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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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은 현대인과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병폐로 인간 상호 간의 소통 단절, 종교의 거부, 허무와 소외 등으로 보고 있다. 현대인들은 소란한 사회에서 절망하며 소용돌이치고 있는데, 그는 이런 현상의 원인으로 신과의 단절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영적 빛을 상실하고 어둠 속을 방황하며 두려움과 허무 속에서 세상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죄인이었다. 「성회 수요일」에서 화자는 침묵의 여인을 통하여 인류의 구원과 평화를 꿈꾼다. 황무지 같은 세상을 이기고 죽음을 넘어설 힘은 ‘침묵의 여인’의 기도로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엘리엇은 침묵의 여인을 어머니, 누이, 마리아, 베아트리체, 정원의 영, 망각과 기억의 한 송이 장미, 강의 영, 바다의 영 등 여러 객관적 상관물들을 통하여 이를 설명 한다. 아울러서 죄성과 죄인임을 깨달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종교관과 철학을 제시한다. 이는 기존의 기독교에서 구원의 주인을 예수 그리스도로 여기는 관점과 상이하게 다름을 보인다. 즉 여인의 기도를 간청하는 엘리엇의 「성회 수요일」은 세상의 구원을 향한 삼위일체 하나님 중 성령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문으로 재해석될 수 있겠다. 엘리엇은 기도를 통한 인간의 회복과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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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의 『네 사중주』는 그의 어느 다른 작품보다도 우리의 깊은 사고를 요구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다양한 별칭이 붙어 있으며 특히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엘리엇 개인의 추억과 체험에 의존하여 창작된 작품이다. 그래서 엘리엇 역시 자신이 느낀 체험을 문자화(언어화)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며 독자들은 그의 추억과 체험에 의존해서 출현된 언어화를 적절히 이해하는 것이 본 작품에 대한 이해의 최대 관건이다. 그래서 본 연구는 『네 사중주』의 창작과정에서 ‘추억’과 ‘체험’의 중요성을 간략하게 살펴보았고 이어서 그 ‘추억’과 ‘체험’을 구체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엘리엇의 모습과 함께 인간의 삶의 바람직한 자세를 시간으로 부터의 구원이라는 시각으로 살펴보았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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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목적은 20세기 모더니즘 최고 시인 엘리엇과 모더니즘 최고 소설가 조이스의 1923-1927년 사이의 관계를 전기비평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주로 『T. S. 엘리엇의 서한집』 2권(2009)과 3권(2012), 『제임스 조이스의 서한집』 1권(1957)과 3권(1966)에 수록된 서신들에 나타난 크라이티어리언 편집인 엘리엇이 조지 세인츠베리에 게 조이스의 『율리시즈』 비평문 원고 청탁, 『율리시즈』에 관한 엘리엇 의 비평, 조이스의 눈수술과 가족 숙소에 관한 엘리엇의 관심, 조이스의 『황무지』 패로디시, 조이스의 엘리엇 부부에 관한 안부 등을 탐색하고 있다. 아울러 엘리엇이 「『율리시즈』, 질서와 신화」(1923)에서 리처드 알딩턴의 『율리시즈』 혹평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와 『율리시즈』의 병행 구조의 “신화적 기법”의 수월성 제시, 엘리엇의 사무엘 로스의 『율리시즈』 해적판과 자신 시의 무단 출간에 대한 비판과 공방(攻防), 실비아 비치 주도 조이스의 로스 소송 일환의 국제적 항의문에 엘리엇의 서명 등을 심도 있게 천착하고 있다. 요컨대, 5년 기간에 걸친 엘리엇과 조이스 및 파운드의 수많은 서한들은 엘리엇과 조이스가 친밀한 관계에서 『율리시즈』 비판과 불법적인 판권 침해에 대해 공동 대처를 모색하는 모더니스트 문학 거장들의 협조 관계로 이르기까 지 상호 강력한 영향력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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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S. 엘리엇의 네 사중주는 4 편의 시들로 구성돼 있으며, 각 시의 제목은 특정한 장소의 이름이다-「번트 노튼」(“Burnt Norton”), 「이스트 코우커」(“East Coker”), 「드라이 샐베이지즈」(“The Dry Salvages”) 그리고 「리틀 기딩」(“Little Gidding”). 본고는 네 개 제목들의 첫 글자들을 순서대로 결합하면 ‘B-E-TH-L’ 또는 ‘B-E-THE-L’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이는 ‘Bethlehem’ or ‘Bethel’ 이라는 낱말을 이루게 된다는 가설을 제안 한다. 히브리어로 ‘beth’는 ‘집’을 뜻하므로 ‘Bethlehem’은 ‘빵의 집’을, ‘Bethel’은 ‘하나님의 집’을 의미한다. 본고는 엘리엇의 집필과정을 상세히 탐구함으로써 이 가정을 뒷받침해줄 근거를 찾아간다. 본고는 이와 같은 시인의 은밀히 감춰진 의도에 대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네 사중주』를 신이 인간이 된 역사적인 사건, 즉 성육화가 일어났던 독특한 지상의 공간인 한 특별한 ‘집,’ 즉 베들레헴을 향해가는 여정으로 이해하는 시도를 한다. 특히 메를로-퐁티와 같은 현대 현상학자들에 의해 전개된 공간에 대한 이론을 원용하여, 이 작품을 현상학적인 관점에서 공간적 경험으로서 분석한다. 『네 사중주』의 순례자에게 공간은 실존적이며 존재는 공간적이다. 베들레헴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위해 기억될 수 있도록 인류에게 허락된 유일한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