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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2015.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의 목적은 엘리엇의 인본주의적 관점이 종교적 개념으로 신학적인 기존연구들과 앵글로 가톨리시즘 연구를 통해 어떻게 이해되는지 살펴보고 종교와 사회공동체를 연결하려는 엘리엇의 노력이 세속적인 인본주의와 기독교 인본주의와도 어떤 면에서 다른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앵글로 가톨릭으로의 그의 개종은 대부분 선조의 종교인 유니테리언과 철학적 연구를 통한 회의적 태도와 어빙 배빗의 사회적 토대, 흄의 원죄이론과 랜슬럿 앤드류즈의 삼위일체와 성육화를 강조하는 설교에 의해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았으며 개인 자유주의와 신앙 문제를 제기한다. 이 연구는 엘리엇의 궁극적인 종교적 성향이 앵글로 가톨릭 공동체를 토대로 한 종교적 삶에서 인본주의와 지성인의 종교적 기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의 신앙의 핵심으로서 감정을 통제하는 종교적인 인본주의에 대한 엘리엇의 관점은 전통적이고 체계적인 종교적 정신을 깊게 하는 것과 앵글로 가톨릭의 옥스퍼드 운동과 밀접하게 관련된 고교회적 기독교적 성향에 헌신하는 것으로 그의 지적으로 얽혀진 종교적 신념과 사회적 삶을 이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82.
        2015.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Eliot was impressed with Charles Baudelaire’s technical mastery and particularly with his employment of symbolic imagery as a means of representing a spiritual or emotional state of modern man. This paper makes it clear that Baudelaire’s decadent metropolitan settings appear in Eliot’s early poetry including “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 This paper argues that Eliot not merely presents the imagery of the sordid common life of a metropolis but attempts to transform such imagery to disclose the symbolic landscape in the protagonist’s mind. Eliot recalls from his past life memory and daily observations concrete physical equivalents for intangible feelings of modern humans. This paper shows how all the scenery of the poem, indoor and outdoor, is transferred to the psychological landscape of Prufrock himself. And this paper also argues that the symbolist device of objective correlative, then, in Eliot’s hands, renders the complexity of modern human experience as well.
        83.
        2015.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S. 엘리엇의『대성당에서의 살인은 대주교 베켓의 순교를 이상화하는 대신에 그를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한 성자로서 사람들의 영적 영역을 항구히 지배하고자 하는 문제적 인물로 극화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 세계에서의 자신의 영적 지도력을 항구히 하려는 그의 욕망을 부분적으로 해체해버리는 기사들과 대면을 거치면서, 그는 자신의 순교가 자신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절대타자인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좌우됨을 깨닫게 된다. 대주교의 하나님의 뜻에 최종적인 복종은 그의 타락한 영혼을 구제하는데 기여하며, 이를 지켜본 캔터베리의 가난한 여인들인 코러스는 베켓의 죽음을 통해 영적 구원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85.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T. S. 엘리엇이 유기적 공동체와 유럽 문화의 통일성에 대 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하여 문학적이며 문화적인 의미와 의의를 검토한다. 그의 유기적 공동체에 대한 모델은 17세기 이전의 농 업 또는 기독교 사회에만 기초한다기보다는, 동시대의 산업 사회, 특히 현대 유럽 사회에 기초한다. 1922년부터 1939년까지 발간된 크라이티 어리언을 통해, 엘리엇은 유럽이란 아이디어와 유럽 문화의 통일성을 동시대의 유기적 공동체가 실현될 수 있는 모델이라고 지속적이며 다양 하게 주장하였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었던 민족, 국민, 종교 라는 개념을 넘어서서 공통된 유럽의 전통에 근거한 유럽 문화의 통일 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폴 발레리, 후고 폰 호프만스탈, 오르테가 이 가셋과 같은 당대의 유럽의 지식인들과 공유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공통된 문화유산으로 통일된 문화를 가진 유럽 공동체를 재건하는데 많 은 노력을 기울였다.
        86.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전지전능한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은 T. S. 엘리엇의 인생을 통하 여 드러나는 것이다. 악의 존재와 인간의 근본적인 불완전함에 대하여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던 엘리엇은 자신이 유니테리언 교리가 상징하 는, 진보의 이상에 바탕을 둔 낙관주의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러한 낙관 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엘리엇은 종교와 문학을 통합시킬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하였다. 문학에서 종교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은 「종교와 문학」이라는 에세이의 서두에서 잘 드러난 다. 엘리엇은 이 에세이에서 문학 비평은 윤리적, 종교적 관점을 통해 보완되어야 하며, 윤리적인 관점과 종교적인 관점이 조화를 이룰수록 문학이 더 풍부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엘리엇은 문학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그 가치를 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외부에 있 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종교가 문학에 대한 도덕적 또는 윤리적 판단에 대한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87.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엘리엇은 매우 포괄적인 시인이다. 그는 겉으로는 자신의 선배시인이 나 비평가를 맹렬하게 공격하는 듯해도 실제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 우고 빌렸으며 이를 자신의 몰개성 시론에 적극 활용하였다. 프랑스 상 징주의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그들의 영향 력을 가렸지만, 시의 자기충족성이나 시어의 기능, 그리고 시인의 임무 나 역할과 같은 중요한 이론과 개념에서 많은 부분을 수용했다. 엘리엇 의 몰개성 시론의 가장 근본이 되는 개념을 발레리와 말라르메가 그들 의 이론에서 이미 예견하고 실행하였으니, 시는 자동성을 가진 몰개성 적 존재이며, 창작의 과정은 인간이 노동력을 매개로 여러 파편을 융합 하여 유기적이며 와해될 수 없는 총체적 존재를 만드는 것이고, 시어는 대중의 언어를 차용한 탓에 근본적으로 몰개성적인 것이며, 시인은 그 스스로가 보편인류를 대변하는 대행자라는 개념은 모두 엘리엇의 시학 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비록 엘리엇이 시어와 시인의 역할 부분에서 이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으나, 시의 자동성을 예술의 자기충족성으로, 상징의 몰개성적 특성을 객관적상관물로 전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시인 으로부터 시의 독립성으로 나아간 데에는 이 두 상징주의 시인의 영향 이 지대하였음에 틀림없다.
        88.
        2014.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Eliot and Valrie’ ashes are interred in the church, with the inscription, “In my end is my beginning.” After three hundreds years Eliot returned to the home of his forefather, Andrew Eliot, who left East Coker for the Massachusetts Bay Colony of America in 1660. Eliot received the Christian sacraments of baptism and confirmation in Holy Trinity Church at Finstock on the 29th and 30th June, 1927 that belongs to the Church of England. He was made a member of the Holy Catholic Church that belongs to Anglo-Catholicism. Eliot has a doubting belief and finally became an Anglo-Catholic who believes in the doctrines such as Incarnation and Holy Trinity that differ from that of Unitarianism inherited from his family. His conversion was the result of a lifetime skepticism and progression accepting confession, pray, and contemplation for practice not a leap of faith. Eliot underwent a kind of gradual dialectic of reasons for his adopting ideological position throughout one’s earthly pilgrimage. At last Eliot found a historic and religious community of an Anglo-Catholic in East Coker to have certain admiration for the religious belief, for the life of prayer and contemplation, and for those who attempt to practise it.
        89.
        2014.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Surrealism must have influenced myriads of authors, artists and musicians as it was commonly expected as one of the most socio-culturally influential movement ever. However, it is seldom noted that T. S. Eliot may have close connection with Surrealism. Surrealism was originally an artistic movement that was conducted mainly by the works of artists and poets. Even though surrealism had been mainly regarded as the name tag for those who chiefly worked on paintings, it was originally initiated by a group of poets such as Louis Aragon, Paul Eluard, Guillaume Apollinaire, André Breton, Stéphane Mallarmé, Arthur Rimbaud, and Charles Baudelaire. Considering the culture atmosphere of the time when it was written, The Waste Land, in this respect, may possibly be read as the outcome of surrealistic influence upon T. S. Eliot. As a matter of fact, it must be a mixture of Freudian theory and the aesthetic spirit of rebellion against the traditional concept of art. Even though there was unbridgeable gap between surrealism and Freudian theory, they resonate with each other in their burgeoning period. The surrealist movement was first publicly announced in 1924 by André Breton in his famous “Surrealist Manifesto.” The nascent period was overlapped with that of The Waste Land. That is to say, the formation of surrealism had already begun after the world war I, which gave Eliot the sense of horror and emptiness and got him disillusioned from the hypocritical western civilization which found the elemental frame of The Waste Land.
        90.
        2014.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텅 빈 사람들』은 전기시에서 후기시로의 의도적 전환의 결과다. 근대적 분열로 인한 주체의 다층성에 관한 개인적 내면의 공시적 파악이 전기시라면, 후기시는 극적 글쓰기를 통한 공동체적 주체의 통시적 회복 노력이다. 아감벤의 제의와 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엘리엇의 의도는 전통유지의 근대적 제의에 대한 의문 제기이면서 새로운 제의 창조라는 이중작업이다. ‘죽음의 꿈 왕국,’ ‘죽음의 황혼 왕국’과 ‘죽음의 다른 왕국’이란 공동체 질서에 대응되는 ‘텅 빈 사람들’의 약한 영혼들, 가이와 커츠의 격렬한 영혼들과 회개 후 단테의 영혼 등 주체의 위계질서가 입증된다. 구원의 길이 안보이지만 신비주의 전통에서의 새로운 제의 창조가 가능하다. 중층적이며 수직적 주체관계는 수평적 주체관계를 전제로 하는 언어체계에 난경을 만들기에, 새로운 언어체계로 새로운 제의를 창조하려한다. ‘텅 빈 사람들’에게는 끝나버리는 세상에서, 자신의 영혼이 선택한 어두운 밤이라고 믿고 불굴의 의지로 신의 은총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가 있을 수 있다. 엘리엇의 이중작업의 결과로 『텅 빈 사람들』의 독자들은 『황무지』에서의 절망에 이르는 세속적 경험과 후기시에서의 종교적 신앙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91.
        2014.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니체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신의 죽음에 의해 만연된 허무주의라고 생각했다. 니체가 진단했던 이런 허무주의적 양상은 엘리엇의 초기 작품들 특히 「게론션」과 『황무지』에서 표현되었다. 그러나 니체가 기존의 교회가 예수의 가르침 중 죄와 심판을 강조하고 사랑을 강조하지 않은 것에서 신의 죽음을 야기시켰다고 주장한 반면에 엘리엇은 성육한 예수의 본질을 인간이 알아보지 못한 것에서 인간의 절망적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았다. 니체는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영원회귀 사유를 주장하였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유에 따르면 생성은 변화이자 생명이며 곧 존재이고, 모든 순간은 의미가 있다. 영원회귀는 일종의 사유실험으로서 인간의 삶에 대한 태도를 시험하는 것이다. 한편 엘리엇의 후기 시 『네 사중주』에서 세상만물은 유전의 법칙에 따라서 변화하는데, 이것은 니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생성과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니체의 생성은 곧 존재로서 가치우위에 있는 반면에 엘리엇의 세계는 유전의 법칙에 지배를 받지만 영원과 시간이 교차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의미와 가치를 준다.
        93.
        2014.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엘리엇의 ��에어리얼 시집󰡕중의 한 편인 「머리나」(1930)를 브래들리의 일원론적 인식론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문학이든 종교든 철학이든 엘리엇의 궁극은 현상의 세계에서의 분열이나 모순을 넘어선 초월적이며 통합적인 세계이다. 엘리엇은 근대의 문명적 정신적 황폐가 데카르트 이래로 서구 정신을 지배해 온 이원론적 인식론에 있다고 진단하고 이의 극복을 시도해왔다. 브래들리의 철학은 물질과 정신, 감성과 이성 그리고 주체와 객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보았다는 점에서 일원론적이다. 이 작품의 제사인 세네카의 ��헤라클레스의 광기��와 셰익스피어의 후기극 『페리클레스』의 주제에 근거한 「머리나」의 주제는 극적 인식이다. 엘리엇의 궁극은 일상의 삶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현상 너머의 세계의 발견을 통한 초월적 경험에 있다. 본 논문은 극적 인식을 통한 초월적 경험을 브래들리의 인식론의 단계에 적용시켜 분석함으로써 이 작품 해석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엘리엇 예술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94.
        2014.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재의 수요일』이전의 전기시에서 엘리엇은 시적 화자의 자아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것은 자아를 발견하려는 또는 자아 없이 행하려는 투쟁의 과정이었다. 프루프록과 다른 관찰들 의 제사(題詞)의 마지막 2행은 시적 화자로서 자아인 ‘나’의 주체가 그림자같이 텅 빈 상태에 있으며, 이것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점을 요약하고 있다. 이러한 견고하고자 하지만 견고할 수 없는 프루프록과 다른 관찰들의 주체를 ‘주체적인 것’이라보면 이러한 ‘주체적인 것’이 이 시집의 시적 화자들의 주체의 공통된 특징이다. 1917년의 프루프록과 다른 관찰들에서 계속 의문시되었던 주체의 위상에 대해서 1920년의 시집은 질문하지 않는다. 시적 화자의 주체에 대한 내면적인 회의가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시집』의 시적 화자의 주체는 ‘주체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95.
        2014.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S. 엘리엇에 대한 연구는 셀 수 없이 많이 이루어졌지만, 엘리엇이『하버드 애드보킷』(Harvard Advocate)에서 발표했던 시편에 대한 연구는 거의 행해지지 않았다. 이 시들은 1904년에서 1910년 사이에 쓰여진 것 들이다. 엘리엇 연구에서 초기시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초기시라는 명칭은 대부분 이 시기의 시를 지칭하는데 사용되고 있지는 않다. 엘리엇의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지속적인 주제의식과 시학을 고려해볼 때,『하버드 애드보킷』에 실린 10대 후반 20대 초의 이들은 충분히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여전히 이 작품들 속에도 맹아적 형태의 엘리엇의 철학과 “몰개성이론” “객관적 상관물” 과 같은 후기 시학이 초보적인 형태로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형태로 제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불완전한 시학과 미성숙의 요소들이 나중에 훨씬 더 성숙하고 완전한 시편으로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생각해 볼 때, 그 근원적인 의미로서 『이른 청년기 시절의 시편들』은 그 의미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 다. 비록 이 작품들이 그의 후기시가 이룬 것만큼의 문학적 성취는 이룰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의 시학과 철학이 어떤 맹아적 형태에서 비롯된 것인지 추정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96.
        2014.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의 목적은 엘리엇의 『황무지』에 나타난 죽음을 주로 전기적 접근과 부도덕한 성애가 죽음이라는 테이레시아스의 실체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히아신스 정원, 마게이트 백사장, 선술집에서 릴의 대화, 위험 성당, 밀레 해전 등의 장면과, 바다, 템즈강, 런던교, 시티와 런던, 예루살렘,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비엔나 등에서 성폭행, 죽음 또는 멸망이 병치‧직조되어 죽음의 함의와 상징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요컨대,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제 1차 세계대전 중 에게 해에 익사한 친구들인 루퍼트 브루크와 다다넬즈 해협에서 익사한 장 베르드날 뿐만 아니라 죽음의 기원을 하는 꾸마에의 무녀, 슈타른베르크 호수에 미쳐서 익사한 루트비히 2세, 익사한 페니키아 선원의 타로 카드, 즉 플레바스, 밀레 해전에서 익사한 스텟슨, 미쳐서 연못에 빠져 죽은 오필리아, 궁전이 파괴되어 흙속에 파묻힌 첨탑에 유폐되어 몰락한 아뀌뗀느 왕자, 다시 미치고 자살하는 이에로니모 등과 같이 미쳐서 물에 빠져 죽고 싶은 죽음에의 염원을 암시적‧상징적으로 표백함으로써 죽지 않고 재생의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97.
        2013.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공간의 관점에서 W. B. 예이츠가 묘사한 쿨 장원과 일곱 숲 그리고 T. S. 엘리엇이 명상한 번트 노턴과 장미원을 고찰함으로써 두 시인을 비교하는 것이다. 조명한 작품들은 예이츠의『환영의 바다 』(1906)의 서시 (1900)와 일곱 숲에서 (1902) 및 쿨 호수의 야생 백조 (1919) 그리고 엘리엇의 장시『네 사중주』(1943)의 첫 번째 사중주인 번트 노턴 (1935)이다. 천국 같은 쿨 장원과 낙원 같은 번트 노턴은 에덴동산에 비유될 정도로 아주 흡사하다. 예이츠가 여러 차례 체류한 그레고리 여사의 쿨 장원은 그의 평생의 시신인 모드 곤과 이루지 못한 결혼으로 고통 받던 그의 마음의 치유 공간이었다. 한편, 엘리엇이 첫 연인 에밀리와 함께 방문한 번트 노턴 역시 그의 첫 번째 아내 비비엔과의 별거로 괴로워하던 그의 마음의 치유 장소였다. 예이츠는 숲과 백조의 상징성을 통해 일곱 숲과 쿨 호수를 포함한 쿨 장원을 사실주의화가 및 낭만주의와 상징주의 시인의 기교로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엘리엇은 장미의 상징성과 시간에 대한 철학적 명상으로 장미원과 풀장이 있는 번트 노턴을 입체파 화가 및 철학 시인과 모더니즘 시인의 눈으로 신비적으로 묘파하고 있다.
        98.
        2013.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T. S. 엘리엇의 초기 산문에 나타난 윤리관을 아리스토텔레스, 브래들리, 불교 철학자들에게 보인 그의 관심과 연결하여 논의한다. 이러한 연구는 “윤리” 혹은 “윤리적”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고찰하려는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엘리엇에 대한 전형적인 비평과 달리 그를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재조명해 보려는 시도이다. 즉 엘리엇을 보수적인 엘리트 시인, 편협한 사회비평가 등으로 간주하는 비판적 시각이 있다면, 본고에서는 엘리엇의 산문 중 주목을 덜 받은 글을 발굴하여 그의 윤리관을 논의하면서, 오히려 겸손한 태도, 구체적 일상에 유용한 지혜, 극단에서 벗어난 중용의 방식 등을 그의 윤리적 관점의 핵심으로 부각시킨다. 엘리엇은 브래들리의 “겸손,”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적 지혜,” 불교 철학자의 “중도”의 방식을 높이 평가하면서, 자신의 윤리적 관점을 상대적인 진리와, 우리의 구체적이고 복잡하고 다양하며 변화하는 현실에 열려있는 것으로 제시한다. 미발표 원고를 포함한 초기 산문에서 엘리엇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진리, 도덕적․기계적인 법칙과는 분명 다른 상대주의적 윤리관을 표명한다.
        99.
        2013.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s is well known, T. S. Eliot converted to Anglo-Catholicism from Unitarianism. But he had kept a strong interest in Buddhism throughout his life and Buddhism had left a deep impression on his poetry. The poem “East Coker” was first published in 1940, long after his conversion to Anglo-Catholicism. It contains lots of Buddhist thoughts. The poem begins with a citation from Mary Stuart that “in my beginning is my end” and ends with a sentence, “in my end is my beginning.” These two sentences surely show the concept of reincarnation of Buddhism. Though the phenomenal world is vain and the entity is deep in our minds, human beings don’t understand it.Human beings repeat their phenomenal lives and cannot break up the chain of reincarnation. This poem presents two ways of breaking the chain of metempsychosis: one is to abandon the phenomenal world through practice and the other is to take the middle way of Buddhism. The former is the same as the way St. John of the Cross presented. And the latter is what Nagarjuna Boddhisatva proposed. When we break up the chain of reincarnation, the reality will be a rose garden, that is, in Buddhist term, paradise. We ought to exert a great effort to get to the state. One of the successful efforts is to become humble. Humility is emphasized in Christianity and Buddhism. Humility makes us go into the way of darkness, and that is not different from Buddhist’s way of abandoning selfhood.
        100.
        2013.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So obvious are T. S. Eliot’s conservative tendencies that the only valid question about his politics seems to be how conservative he was. He declared his own position so in religious, political and literary sides, and most of his literary works support this position quite positively. But The Waste Land and his other early works carry some elements which suggest the poet’s sympathy to liberal causes. His well-known literary theories and techniques including ‘objective correlative,’ ‘union of sensibility,’ and ‘collage’ also reflect Eliot’s belief in reason. This advocacy of reason is parallel with liberal and democratic tenets against which Eliot showed overt abhorrence. Psychologically Eliot can be seen to be on the stage of alienation around the time of the composition of his early works including The Waste Land. One is necessarily subject to the drive to move away, at a stage of growth, from the mother or the world one used to belong to in one’s initial phase of life. Eliot gives in to the transcendental in Four Quartets and Ash-Wednesday, suggesting he has returned to the dominance of the mother in infancy. It is questionable how Eliot looked at the difficulties of the underprivileged then suffering from the world order he supported with his increasingly conservative outl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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