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naval forces' remains of the East coast with special reference to the Kangwon province
우리나라는 연해와 島嶼地域이 많고 또 바다와 연결되는 하천이 많아 일찍부터 물자와 사람을 운송하는데 선박을 이용하였으며, 자연히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활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수군에 대한 연구는 주로 軍制, 軍役, 兵船, 營鎭, 수군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고, 특히 비교적 사료가 많이 남아 있는 조선시대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수군 유적에 대한 연구는 주로 고려말 이후의 浦鎭이나 水營에 대한 것이 이루어졌으나 연구 논저가 많지 않다. 특히 강원도 동해안 지역의 수군 유적과 관련하여서는 조선시대 수군진성에 대한 것과 최근 이루어진 異斯夫 관련 심포지움에서 발표된 연구논문 이외에는 없는 실정이다. 이 논문에서는 삼국시대 이래 수군의 운용과 배치, 그리고 강원도 동해안 지역의 유적 가운데 이와 관련 지울 수 있는 浦鎭(병선 정박처나 수군의 鎭)이나 성곽 유적에 대해 연구하였다. 기록을 통해 볼 때 이미 삼국시대부터 수군을 전투에 활용하고 있으며,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이는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신라는 船府를 두었고, 고려시대에는 船兵都部署․司水寺가 있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군사체제에 수군이 완전히 정규군으로 편제되어 수군 병종을 따로 설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각 도별로 수군절도사를 두고 예하부대를 배치하여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조선초기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는 6개 水軍萬戶鎭이 설치되어 병선 17척, 군병 1,103명이 배치되어 있었다. 특히 이 가운데 삼척포에는 병선 4척에 수군 245명이 배치되어 강원도 지역에서는 가장 중요한 수군기지였다. 이후 『경국대전』에 규식화된 수는 병선 16척(無軍小猛船 2척 포함) 수군 420명(소맹선 수군을 1척당 30명으 로 산정) 정도로 감축되었다가 임진왜란 이후로는 삼척포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폐지되었다. 강원도 연해지역의 수군과 관련된 유적으로는 삼척의 오화리산성을 비롯하여 강릉의 방내리토성을 포함한 그 주변유적과 영진항, 안인포 일대, 강릉 석교리토성과 사천진, 양양의 대포영성과 광정진성터, 삼척의 삼척포 진성터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조선초기 수군만호가 배치되어 있었던 속초포가 있고, 기타 명확하지는 않지만 고려시대에 선병도 부서와 관련된 유적이 있을 것으로 여겨지나 현재는 그 위치나 유적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속초 포는 현재의 속초항 일대로 여겨지나 일대가 모두 개발되어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기록에 나오는 쌍성호 浦 鎭이 이것을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쌍성호는 현재 속초시에 있는 청초호를 말하는데 아마 어느 시기엔가 바다와 연접한 潟湖인 청초호를 병선 정박지로 사용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영동지역에는 명주(강릉)의 寧平戍 등 9개의 戍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戍는 일종의 소규모 감시초소를 말하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바다를 감시하기 위한 海防의 일환으로 연해지대를 따라 설치한 것이었으나 이것이 고려시대 수군에 의해 운용된 것인지 아니면 일반 陸守軍에 의 해 운용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또 『關東誌』에 의하면 강릉의 連谷津, 梧耳津, 注文津에는 모두 斥候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있고, 만기요람(軍政編 四 海防 東海)에도 삼척의 藏吾里浦(근덕면 장호리) 가 동해 방면의 선박이 정박하는 곳이고 斥堠가 있다고 하였고, 平海의 仇珍浦ㆍ正明浦ㆍ厚里浦에 역시 척후 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水軍 척후인지 陸守軍 척후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동해안의 수군내지는 海防遺蹟은 현재까지 별도로 연구된 바도 없고, 고고학적 조사도 미흡하다. 향후 더 많은 고증적인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다.
This country has many coasts and isles, and also has rivers linked to the sea. So ships have been used from the early period not only for the deliverance of goods and people, but also for military purposes. Researches on the naval forces have been made mainly on military systems and services, warships, barracks, and naval activities; and the Chosun dynasty in which rich materials remain is the only dominant period for study. Regarding studies on remains of the naval forces, port encampments and maritime headquarters have been usually studies, but there are not many academic outcomes yet. In particular, on the remains of the east coast naval activities in Kangwon, little research is introduced except a study on naval forces fortress in the Chosun dynasty and a related symposium on Isabu(斯夫) that was made recently. This thesis deals with the employment and disposition of naval forces since the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and the relics of the East coast in the Kangwon province related to port encampments and fortresses. Based on the surviving records, it can be said that from the Three Kingdom period on, the naval forces had been used for military purposes and their activities developed throughout the Koryo and Chosun dynasties. For example, Silla ran an independent vessel department, Koryo set up naval institutions such as 'Seonbyungdobuseo'(船兵都部署) and 'Sasusi'(司水寺), and in Chosun dynasty the naval forces had been developed as an independent regular force in the military systems, and every province had a navy command in chief to reign over the military units under his control and to defend the region in charge. In the East coast of early Chosun, there were the six naval forces encampments(水軍萬戶鎭) where the 17 warships and the 1,103 navies were stationed. Among these, Samcheok port was the most important camp with the 4 warships and the 245 navies. In accordance with the instruction of Kyunggukdaejun(經國大典), the size was reduced to the 16 warships (including two 'mugunsomaengsun=無軍小猛船') and the 420 navies(30 somaengsun navies per warship), and after the Japanes Invasion in 1592, most camps were withdrawn except the Samchuk port camp. The remains relating to the naval forces of the near coast in Kangwon are the likes: Ohwhari mountain fortress(吾火里山城) of Samchuk, Bangnaeri mud wall(坊內里土城) and the surrounding ruins, Youngjin harbor(津港) and Anin port(安仁浦), Sukkyori mud wall(石橋里土城) of Kangneung, Sacheonjin(沙川津), and Daepoyoung fortress(大浦營城) and the site of Kwangjungjin fortress (廣丁鎭城터) of Yangyang, and the site of Samchukpojin fortress(三陟浦鎭城터) of Samchuk. In addition to this, there is Sokcho port where Sugunmanho(水軍萬 戶) was displayed in the early Chosun period, and also there is one site which is allegedly related to Sunbyungdobuseo(船兵都部署) of the Koryo dynasty, but the exact place and relics are not known at all. Although Sokcho port is supposed to be the same area of current Sokcho harbor, no trace can be confirmed due to urban development of the area. In Kwandongji(關東誌), there is a record that Yongokjin(谷津), Oyijin(梧耳津), Jumunjin(注文津) had patrols. In addition to sites that have a lot of scouting. These sites is not clear that it used by the Navy, or the Army. The naval forces of the East coast and remains has never been studied seriously so far and also there is very little archeological investigation attempted. It clearly demonstrates that active historical researches and investigations are requ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