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Jeongjo/正祖's Publication of 『Daehak Yueui/大學類義』 and the relationship with 『Seonghak Jibyo/聖學輯要』
정조의 『대학유의』 편찬과 『성학집요』
『大學類義』는 정조가 『대학』을 토대로 편찬한 군주 聖學의 교재로서 『聖學輯 要』와 깊은 관련이 있다. 정조는 세손 시절 『성학집요』 강독과 함께 抄出 작업 을 진행하였으며, 이것은 정조 5년 『聖學輯略』으로 완성되었다. 『성학집요』에 대한 이해는 『大學衍義補』로 확대되었고, 이것이 『대학유의』 편찬으로 귀결된 것이다. 『대학유의』의 편찬은 『大學衍義』와 『大學衍義補』의 내용을 초출하여 재편집 한 것이지만, 나아가 국왕의 입장에서 『大學』의 정신을 체득하고 스스로 聖學 교재를 편찬하려는 것이었다. 『대학연의』의 내용 중 「帝王爲學之本」에서 三代 이후 군주의 학문에 대한 3개 세목을 삭제하였는데, 이는 君師로 평가받는 삼대 의 군주만을 학문의 모범으로 삼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治國・平天下의 구체 적인 통치술은 그대로 수용되었다. 이는 삼대 군사의 이념도 구체적인 통치 과 정과 결합함으로써 비로소 『대학』이 추구한 全體大用의 학문체계로 완성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지향은 앞서 『성학집요』에서 모색된 것이었다. 이이는 『대학연의』의 시각을 계승하면서 통치 과정에 대한 내용을 수용하여 『대학』의 이념을 재구성 하였다. 이에 대해 정조는 『대학연의보』를 높이 평가하면서 그에 담긴 통치술 을 대폭 수용하였다. 이이는 『성학집요』를 통해 군주와 신료를 포함하는 보편 적 관점에서 효능을 말하고 군주에게 수신을 강제하려 하였다. 이에 대해 정조 는 『대학유의』를 통해 太平의 임무를 가진 국왕을 중심으로 놓고 여기에 신료 들의 보좌 역할을 규정함으로써 『성학집요』의 성학론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The royal text 『Daehak Yueui/大學類義』 was based upon the classic text 『Daehak/大學』, and it was published to be used in the King's own studies(聖學). The text was deeply related to a previously published text called 『Seonghak Jibyo/聖學輯要』. The understanding of 『Seonghak Jibyo』 evolved into the understanding of 『Daehak Yeoneuibo/大學衍義補 』, and such evolution of understanding eventually resulted in the publication of 『Daehak Yueui』. By publishing this text, King Jeongjo demonstrated his belief that the philosophy of the Master King(君師) should be supported with actual ruling in order to ascend into a new level of academic study based upon the concept of 'Jeonchae Daeyong/ 全體大用' which was pursued by people at the 『Daehak』 level. In 『Seonghak Jibyo』, both the king and the vassals were required to engage in extensive character building exercises(修身). Yet in 『Daehak Yueui』, the King, who was responsible for the achievement of the status of Taepyeong(太平), was put in center, and the vassals were labelled as mere supporters. Such changes mirrored the King's own efforts to overcome the notion first suggested in 『Seonghak Jib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