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7세기에 활동했던 林眞怤(1586-1657)의 학자적 삶을 분석한 것이며, 궁 극적으로는 조선후기 南冥學派의 다양성을 해명하는데 주안점이 있다. 그 다양성 이란 강우 남명학파권에 지역적 연고를 두고 曺植 및 그 문인들과 일정한 학연을 맺 으면 기계적으로 남명학파의 범주 속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임진부를 양성한 학문적 물줄기 속에 남명학파적 요소가 충만해 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삶과 학문을 규정할 수는 없다. 그는 조식을 매우 흠모 했고, 南冥學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평생을 부심하면서도 뇌리 한 편에는 항상 李滉 을 담아두고 있었다. 임진부는 남명학과 退溪學의 절충을 모색하고 있었고, 퇴계학 이 절충의 종속 요소가 아니라는데 중요성이 있다. 순혈성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남 명학파 연구에 있어 임진부의 존재는 향후 연구의 새로운 시각으로서 깊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