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Life and Pastoral Characteristic of Rev. Kim Ki-beom
본 연구는 토착인 최초의 목사안수자 가운데 한 명인 김기범(金箕範)의 생애와 그 목회적 성격을 살펴보는데 그 주요한 목적이 있다. 19세기 말, 기독교 복음을 수용한 김기범은 미감리회의 전도인 직첩을 받고 오늘날의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초기 한국 개신교의 토착지도자였다. 복음전도를 향한 열정과 성실, 그리고 그 능력은 일찍이 선교사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 그 결과 1901년 5월, 그는 동료 김창식과 함께 한국 개신교 역사에 있어 첫 번째 목사가 되는 명예를 얻는다. 그러나 병약했던 탓에 그는 지속해서 목회하기가 어려웠다. 때로는 선교사 혹은 교인들과의 갈등 도 있었다. 결국 김기범은 1912년 미감리회 한국연회에서 학습인 과정을 탈락함과 동시에 제명처분을 받았다. 이후 미감리회에서 그의 존재는 잊혀졌다. 그러한 이유로 김기범은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본 연구는 이점을 염두에 두고 김기범의 생애 복원에 주된 관심을 둔다. 동시에 그의 목회적 성격도 어떠했는지 함께 파악해 보도록 한다.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life of Kim Ki-beom, one of the first pastors in Korea, and his pastoral characteristics. Kim Ki-beom, who accepted Christianity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was the leader of the Korean Protestant Church in the early days of his activities centered on Incheon. The enthusiasm, sincerity, and ability of evangelism were recognized by missionaries. As a result, in May 1901, he and his colleague Kim Chang-sik won the honor of becoming the first pastor in Korean Protestant history. But his illness prevented him from continuing his pastoral activities. Sometimes there were conflicts with missionaries and believers. Therefore, Kim Ki-beom was expelled from the Annual Conference of the Methodist Episcopal Church in 1912. Since then, his existence has been forgotten among Methodist Episcopal Church. As a result, Kim Ki-beom has not received much attention from Korean churches. This study focuses on constructing Kim Ki-beom’s life based on this. At the same time, this study will investigate the characteristics of Kim Ki-beom’s activities as a pas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