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아미타경』은 극락세계에 가서 나기를 발원하고 그곳에 왕생하기 위 해 ‘칭명염불(稱名念佛)’에 전념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미타불의 이 름을 듣고 일심(一心)으로 염불하면 누구든지 극락세계에 왕생한다는 것 이 경의 요지라 할 수 있다. 초기경전에서는 염불을 선정과 삼매로 규정하고 있다. 또 염불이 삼매(三 昧) 또는 선정(禪定)과 병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염불이 곧 선정이고, 선 정이 곧 염불’이라는 일여(一如)의 관계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8종의 조사(祖師)라 불리는 용수(Nāgārjuna)가 난행도(難行道)와 이행도(易行 道)라는 정토문의 씨앗을 뿌리자, 중국불교는 이를 바탕으로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해 정토왕생을 추구하는 정토교의 기틀을 놓았다. 이들 정 토교 초기 사상가들의, ‘나무아미타불’만 일심(一心)으로 염불하면 왕생할 수 있다는 신념에 기반한 염불수행은 한국불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 다. 『삼국유사』에는 염불을 통해 정토에 태어난 기록이 보이고, 고성 건봉사 의 사료는 신라 경덕왕 대의 염불 ‘만일결사’를 전해준다. 이러한 ‘칭명염 불’의 전통은 현대에까지 이르러 오늘날에도 염불 ‘만일결사’를 하는 사 찰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불교에 있어서 ‘칭명염 불’ 수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특히 재가불자의 염불수행은 어떠해야 하는가? 초기경전은, 보시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그 과보가 부와 명성과 같은 세속 적인 가치에 머물지 않고 초기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진리인 사성제를 깨 닫는 인(因)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아미타 염불수행은 그것이 칭명염불 이든, 관상염불이든 ‘정토의 청정한 공덕상’과 ‘아미타 부처님의 공덕’에 의지한 정토왕생을 목표로 한다. 이는 극락정토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길 가운데 하나로 ‘보시바라밀로 장엄된 청정한 세상’을 상정할 수 있는 여 지를 준다. 극락정토를 단지 죽은 뒤에나 갈 수 있는 이상세계로만 상정한다면, 현실 에서의 신행은 그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대의 불교 신앙 인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정토의 개념’을 ‘이 세상의 불국토화’로, ‘왕생의 개념’을 ‘보살의 마음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등으로 전환시켜야 할 것 이다. 또, 염불의 궁극적 목표를 ‘정토왕생’[불국토화]에 국한할 것이 아 니라 그 과정까지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The Shorter Sukhāvatīvyūha Sūtra states that the Name-Chanting should be concentrated to be born the Pure Land. The gist of the text is that listening the name of the Amitābha and chanting with their whole heart make people be born in Pure Land. In Early Buddhism, Chanting is regulated the Concentration and Samadhi. It is said that the Chanting is not compatible with Samadhi or Concentration but Chanting is Concentration and the Concentration is the Chanting, that is to say, the relation of being united. Chinese Buddhism established the Pure Land Buddhism which pursues to be born in Pure Land leaning on the wish of the Amitābha after Nāgārjuna had established the Pure Land Way called the ‘Harder Way’ and ‘Easy Way’. The belief of the Chanting of ‘Namo Amitābha’ by early Pure Land thingkers with which we are able to be born in Pure Land greatly caused influence Korean Buddhism. The records are seen in the 『Samkukyusa』 in which Sentient Beings have been born in Pure Land through Chanting and the documents at Geunbongsa in Gosung tell us the Buddhist Association during the 10,000 days in the reign of King, Geungduk of Silla dynasty. This tradition of the Name-Chanting continues to even today and we can witness that many Buddhist temples do the Buddhist Association during the 10,000 days. What is the significance of the Name-Chanting in Korean Buddhism these days then? What should be the Name-Chanting for lay followers like? The Early Buddhism literature says that it is the cause of enlightening the Four Noble Truths which is fundamental doctrine of Early Buddhism by the mind of dana. The Chanting practice of the Amitābha sets a goal of being born in Pure Land depending on the pure virtue of the Pure Land and the virtue of the Amitābha. This shows us the Pure Land which realizes the Land of Happiness decorated with the Dana Pāramitā. We should think that the Pure Land is not the Land where we could arrive after death but where real world could arrive. The concept of the Pure Land should be changed into the Budda Land in real world or the concept of being born Pure Land into being newly born with the mind of Bodhisattva. Furthermore, the final goal should include not only being born Pure Land but also the process of being born the Pure 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