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펄스타인(Philip Pearlstein, 1924-2022)은 미국 현대의 정밀-사실주의 (Sharp-Focus Realism) 작가이다. 1949-1950년 작가 활동을 시작한 펄스타인은 당시 미국의 주류 미술인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 1960년대 추상표 현주의에 회의를 느끼고 인체 누드를 주제로 구상 회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펄스 타인의 누드화는 극(極)사실적이면서도 추상적인 구성을 통해 독창적인 조형성을 보 여준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펄스타인의 정밀-사실주의 누드화에 나타난 추상적 구 성의 특징과 그 기원을 살펴보고자 한다. 펄스타인의 정밀-사실주의 누드화는 화면의 모든 부분이 동등한 초점으로 묘사 된다. 그는 누드화의 인체, 사물, 공간을 전통적인 원근법이 아닌 동일 선명도로 표 현하여 화면은 평면의 탈중심적이 된다. 이러한 특징은 1970년대 미국 하이퍼리얼 리즘 회화와 유사하지만 펄스타인은 사진을 사용하지 않았다. 펄스타인에게는 대상 뿐 아니라 대상을 둘러싼 외부 조건의 변화와 우연성을 포착하는 것이 작품에 중요 한 요소였다. 그는 대상을 직접 눈으로 관찰하여 사진을 기반으로 하는 하이퍼리얼리 즘과는 다른 방식의 사실주의를 추구했다. 펄스타인의 직접 관찰을 통한 묘사는 화면에서 작가의 주관적인 감성이나 의미를 배제하는 요인이 되었다. 펄스타인은 회화가 기술이 성취된 형식만으로도 충분히 예 술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최대한 객관적 시선을 통해 작품을 제 시할 뿐이다. 그 형식에서 의미를 찾고 감동하는 것은 감상자의 몫이다. 이후 펄스타 인은 인체와 사물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대신 중립적 개체로 표현하여 화면을 구성 하는 요소로 사용했다. 1980-1990년대 펄스타인 누드화의 특징은 정밀-사실주의 기법 화면에 추상적 구성이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펄스타인은 추상표현주의와 모더니즘 회화의 영향으로 특히, 몬드리안의 수평적 확장과 리듬감, 클라인의 추상화된 선적인 구성은 그의 누드화 조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여기에 동양 회화의 여백과 같은 공간성을 자 기 누드화에 적용하여 3차원의 공간을 형성했다. 펄스타인은 모더니즘 추상 조형성 을 누드화에 활용하였으나 반드시 평면에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는 자유로웠다. 그 결과 1980-1990년대 펄스타인의 누드화는 인체, 사물, 공간을 정밀-사실주의 기 법으로 표현하면서 구성에서는 모더니즘 추상의 평면성과 화면 내부와 외부로 확장 되는 3차원의 공간성을 동시에 성취하게 되었다. 1980-1990년대 펄스타인의 정밀-사실주의 누드화는 추상표현주의와 모더니즘 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기 눈으로 관찰된 3차원의 공간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여 화면에 담아내는 독자적인 조형성을 성취했다. 이것은 펄스타인이 사실적 재현과 추 상적 구성을 넘어서 자기만의 예술적 깊이를 추구한 것으로, 주류 미술과 대중적 기 대를 넘어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끊임없이 창조해 나간 결과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