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수산시험장에서 1932년 동해 해양조사에 따른 해류도를 사용하였다. 8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 지구 온난화로 동해의 해류도 바뀌었을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사부함대의 항로를 중심으로 동해의 해류를 알아보고자 직접 고안한 해류병에 이사부해류병이라 명명하고, 2014년부터 2020년까지 해류병 2,020개를 투하하여 57개를 회수하여 동해 해류의 흐름을 알아보았다. 이사부 장군이 505년 실직 군주로 부임하여 ‘왜 7년 동안이나 실직에 있었을까?’ 이사부 장군은 하슬라에 입성하려고 하였으나 고구려의 잔존 세력들이 남아있어 하슬라로 갈 수 없어 적의 후방을 급습하는 수륙양동작전을 계획하면서 전선을 만들었다. 이사부함대는 실직항에서 만들어져 강릉 안인으로 이동하여 상륙작전으로 고구려 군사를 물리치고 우산국 정벌 준비를 하였다. 이사부 장군은 목우사자의 계책으로 우산국을 정벌하고, 이사부함대는 우산국 복속으로 동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고 신라 수군 진영인 울산항으로 가서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본고에서 해류병 실험을 통하여 이사부항로에서 해류가 어떻게 이동하는지와 이사부가 수륙양동작전을 감행한 흔적들을 찾아보고, 이사부함대가 이동한 경로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토 균형 발전과 해양력 강화 차원에서 동해의 중심인 삼척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동해문화재과 신설과 동해해양유물전시관 건립을 추진해야 한다.
이사부 장군은 신라의 옛 영토를 탈환하기 위하여 육로로 진격하였고, 실직성을 탈환하여 지증왕 6년(505) 실직군주가 되었다. 실직군주로서 신라의 숙원을 해결하기 위하여 북진을 잠시 멈추고 실직에서 이사부 함대를 제작하였다. 이사부 함 대는 실직의 오십천 하류 정라진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동해안 전체를 보아도 이만한 조건을 갖춘 자연항은 없었다. 정라진 건너불은 우산국과 거리가 가깝고 정 동방향이며 송림으로 싸여있어 파도와 외부의 적으로부터 안전하였다. 또한 인근에서 선박재료를 오십천 강물을 이용하여 쉽게 옮길 수 있으며 배후도시인 실직 성과 실직 제일의 갑자평야가 있었다.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이사부 장군은 북진정책을 잠시 멈추고 왜구의 피해를 막고 동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우산국 정벌을 먼저 계획하였다. 이 계획은 지증왕의 명령이었는지 아니면 이사부장군의 전략인지 알 수 없지만, 우산국을 복속시켜 공물을 바치게 하였고 신라의 숙원인 왜구의 피해도 막을 수 있었으며 동해의 제해권을 확보하여 신라 가 북진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1500년 전 울릉도로 간다는 것은 명령과 유망, 표류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이사부가 지혜 많은 젊은이고, 우산국 정복이 신라의 숙원사업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론해 본다. 삼국시대의 선박 발달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여 확인하기 어렵지만, 과연 이사부 전선은 어떻게 생겼을까? 전선에는 돛을 달았을까? 이사부 장군도 이 문제로 선박 기술자들과 많은 토론을 하였으리라 생각된다. 당시 신라 전선은 돛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이사부 전선은 신라 전선 최초로 돛을 달았을 것으로 예측된다. 목우사자를 계획할 이사부 장군이라면 당연히 비밀병기인 전선 제작에 다른 나라의 최신정보를 수집하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산국을 정벌하기 까지 6~7년이라는 오랜 기간이 걸렸는데 여기에는 전선을 만들기 위하여 여러 번의 시행착오도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사부 장군은 실직에서 전선을 만든 후, 하슬라를 탈환하여 국경을 넓히고 하슬라 군주가 되었다. 그 후 군사와 군비를 보충하여 실직의 군사와 함께 512년 6월, 이사부 전선에 목우사자를 싣고 가서 우산국을 정벌하였다.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 정벌은 우산국을 복속하여 공물을 얻는 것 보다, 동해의 제해권을 확보하고 신라의 숙원인 왜구들의 침략을 근절 시켰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남해의 이순신 장군이 23전 23승의 불패 신화와 거북선의 신화가 있다면, 동해의 이사부장군은 한 번의 승전으로 200년간 신라를 평온케 한 목우사자의 신화를 창조하였다. 이사부 장군의 현명한 판단과 지략이 오늘날 울릉도의 부속 도서인 독도와 함께 12해리의 영토와 200 해리의 경제수역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이 영토를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