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목적은 2·8 독립선언 전후의 사정과 의의를 체계화하여 3·1 독립운동의 도화선의 한계를 넘어 학생운동의 한국적 의미와 독립운동 전반에 미친 영향, 이후 학생활동에 미친 영향 등을 규명하는 데 있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윌슨의 민족자결론과 고종황제의 서거는 조선 민족의 독립운동에 대한 기대와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둘째, 동경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과 해외 독립운동가와의 네트워크가 3·1독립운 동을 촉진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셋째, 동경 유학생 단체는 조선 독립의 방향과 이론을 정립하는 조직적 세력으로 성장하였으며 민족 독립의 지 혜와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넷째, 2·8 독립선언은 일단 실패로 돌아갔으 나 이후 독립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유학생들의 독립선언은 국내 독립운 동가 지도층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끌어냄으로써 3・1 독립운동에도 지대 한 영향을 미쳤다. 다섯째, 2・8 독립선언은 이후 오사카에서 독립선언이 나 국내 독립운동 등 다양하고 분화된 형태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큰 역 할을 담당했다. 또한, 많은 유학생이 귀국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거나 나 중에 임시정부에 가담하여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결론적으로 2·8 독립선언은 이후 실천적 행동적 의지를 갖추고 향후 독립운동을 전 개하는 데 발판을 제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