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인간의 관계는 김동리 소설의 핵심이며 여신적 인간 창조를 통해 구현된다. 여신적 인간은 인간 내부의 신성을 발현시켜 한계상황을 외재적 신에 의지하지 않고 극복하는 인간이다. 여신적 인간의 초월적 성격은 만유재신론을 기본으로 하고, 외재하는 신을 인정하는 동시에 인간 내부에 잠재된 신성을 강조 하는 김동리의 의도를 보여준다. 박현수의 ‘너머-여기’ 사유에 대한 정리는 이 연구의 주요 대상이 되는 「무녀도」, 「사반의 십자가」, 「등신불」을 분석하는 좋 은 방법이 된다. 소설 「무녀도」의 모화, 「사반의 십자가」의 사반, 「등신불」의 만적은 각각 ‘너머-저기’ 또는 ‘오직-여기’ 사유를 극복하고 ‘너머-여기’ 사유를 실현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 방식은 동학 인내천 사상과의 연결 가능성을 시사한다.
대개 작가의식은 작가라는 주체의 통일된 의식으로 규정된다. 작가의식이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작가의식의 변화’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관점으로는 상호 모순적으로 드러나는 작가의식들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김동리의 경우 무녀도 개작 과정이나 기독교 소재 소설들에서 작가의식의 균열이 나타난다. 자아의 모순성이 단순한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면 원래부터 자아는 하나로 단순화할 수 없는 주체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각 텍스트는 그 나름의 특징을 가진 것으로 비춰지는데, 그것은 하나로 통일된 작가의식으로 보기 어렵다. 이 글은 텍스트 창작 과정을 작가의 정체성을 점유하기 위한 조각 작가들의 경합 과정으로 본다. 조각 작가는 작가의 경험을 통해 각기 다른 조각 작가들로 생성되고 작가의 자아 내부에서 먼저 생성된 조각 작가들과 합치되거나 갈등을 일으킨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은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경험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