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사에서 도산 안창호(1878 – 1938)만큼 주요한 연구 대상이 되고 있는 인물은 드물 것이다. 그 동안 도산 안창호에 대 해서는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도산과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 하여 『島山安昌浩全集』을 발간하였고, 역사학을 비롯하여 정치학·경제학·교육학·체육학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저서와 논문들이 발표되었다. 이제 그동안 이루어진 연구 성과를 점검하고, 앞으로 수행할 연구 과제를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도산에 대해서는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연구 성과에 대한 점검은 별달리 없었다. 저서나 논문에서 연구사를 정리하는 것 외에는, 이명화의 「도산 안창호 연구의 성과 와 과제」가 유일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를 통해 1980년대 이전에는 도산의 교육·사상·철학 등에 대한 연구가 많았고, 도산을 위대한 사상가·교육자·민족의 지도자로 평가하는 것이 주요 연구경향이었음이 드러났다. 이에 비해 독립운동과 관련한 연구는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도산은 일평생을 민족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운동 최전선에 서 활약한 독립운동가였다. 1897년 독립협회에 참가한 이래 신민회· 대한인국민회· 흥사단을 조직하고, 이를 이끌었다. 그리고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으로 선출된 이래, 1932년 4월 일제경찰에 피체될 때까지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수립 초기에 내무총장과 국무총리 대리를 겸직하면서, 임시정부의 조직과 체제를 갖추고, 임시정부가 정부로서 기능하고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도산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도산의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도산과 임시정부에 대해 서도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이 글은 도산의 독립운동,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관련한 연구 성과를 점검하고, 향후의 연구 과제를 전망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방법은 간행되거나 발표 된 자료 및 논문을 조사 정리하여 연구의 성과를 점검하고, 이를 기초로 향후 추진할 연구과제에 대해 언급하려고 한다.
독립운동 시기에 도산 안창호(1878 - 1938)만큼 활동한 기간이나 범위가 넓었던 지도자는 드물다. 안창호는 1897년 독립협회에 가입한 이래 1938년 서거할 때까지 일관되게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국내를 비롯하여 연해주와 미주지역·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뿐만 아니라 신민회와 대한인국민회· 흥사단 등을 비롯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대표적인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한국근대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안창호는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으로 선출된 이래, 국무총리 대리를 겸직하면서, 1921년 5월 노동국 총판을 사임할 때까지 2년여동안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다. 이 시기는 임시정부 수립 초기로서, 임시정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물론이고, 사실상 행정수반이나 다름없었던 안창호의 역할과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안창호와 관련해서는 그의 활동과 사상을 비롯하여,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졌다.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활동한 실 상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연구업적이 발표되었다. 이를 통해 안창호가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체제를 정비하고 활동한 내용을 비롯하여, 통합정부를 수립한 과정들이 상당히 밝혀졌다. 이 글은 이러한 선학들의 연구성과를 기초로 안창호와 임시정부의 관계, 그 중에서도 임시정부를 이끈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이해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내무총장으로 조직과 활동기반을 마련하여 임시정부를 출범시키고, 국내외에서 수립된 세 임시정부의 통합을 실현한 과정, 그리고 임시정부가 파국으로 치닫게 된 원인과 그가 임시정부를 떠난 과정을 살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