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per surveys conflicting attributions from ca. 1350 to 1600. There emerge from this brief survey of conflicting attributions three "themes," so to speak, the last two of which run through the entire span of periods covered: (1) conflicting attributions--that is, situations in which the musical or other documentary sources unequivocally attribute one work to two or more different composers--are an ever-present phenomenon from at least the beginning of the fifteenth century to ca. 1550 (with a much smaller number of conflicts appering in both the late fourteenth and late sixteenth centuries), (2) from the fifteenth century on, there seems to be a correlation between the number of conflicting attributions and the means by which music was generally transmitted; that is, the number of conflicts during the second half of the sixteenth century-- small in comparison with the periods before and after--ould seem to be related to the preponderance of printed or manuscript anthologies; and (3) ifone finds a relatively large number of total conflicts for a given composer, the vast majority of those conflicts tends to occur with only one or two other authors with whom the composer has had some biographical intersections, while a larger group of composers will share the rest, each of whom has a smaller number.
이 논문은 안익태가 미국, 신시내티 음악원으로 유학가는 과정과 신시내티에서 필라델피 아로 전학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미국 국립자료보관서(NARA)에서 새롭게 발견된 안익태의 입국 서류와 미 노동부 이민국의 서류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안익태의 초기 미국 생활을 비교적 자세하게 재구성할 수 있게 한다. 이 자료들에 의하면 안익태가 신시내티 음악원에서 수업료 면제를 받으며 공부했으나 음악원의 운영 주체가 바뀌면서 안익태에 대한 경제적 지 원이 사라졌고 미국 이민국은 안익태가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추방 절차를 개 시한다. 안익태는 필라델피아의 템플대학의 음대로 전학가면서 추방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 민국 조사로 압박을 받으면서도 안익태는 신시내티에서 멀지 않은 작은 도시 핀들레이의 교 회 초청으로 연주활동을 하면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다. 또한 이번 연구는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안익태의 커티스 음악원 수학과 유명 지휘자인 프리츠 라이너와의 만남 등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준다. 반면에 입국 서류에 포함된 그의 호적은 논란이 있던 그의 탄생 연도가 1906년임을 보여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