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은 오늘날 탈장르, 크로스오버의 조류를 타면서 다채로운 시도를 통해 클래식음 악으로의 접근을 꾀하고 있다. 그러한 시도들을 발군의 면면들로 대표하는 스팅의 음악은 진 지하고 다각적이며 논리적 구성력을 갖추고 있고, 창작 및 편곡, 연주실제의 여러 범주를 포 괄한다. 그리하여 클래식음악과의 섞임에 있어 노골성과 교묘함, 정교함을 넘나들면서, 동시 에 대중음악 고유의 음악언어와 악기, 음향(기술)을 비롯해 자신의 작업방식, 작업의도, 창작 이상을 보존함으로써 본질적, 시대적 간극을 두고 있는 두 음악장르가 서로 녹아들고 어우러 지게 한다. 이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클래식음악이 다소 폐쇄적인 자기 영역을 넘어 새로운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얻어낼 뿐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현재에 생동하는 음악으로 거듭난 다. 대중음악에 뿌리를 둔 자신의 음악적 자아를 예술음악 작곡가들의 산물에 비춰보고 또 이것들과 어우러뜨림으로써 스팅은 현대의 음악문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있다.
음악사 쓰기는 해석학적으로 연주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쓰여진 텍스트를 읽어내 어야 한다는 점에서 뿐만 아니라 컨텍스트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사변론 적 이론의 순환 속에서 실행을 해야 한다는 점도 그렇다. 전통과 재료에 근거한 상상력을 펼 쳐야 하며 결과물이 나름대로의 응집성과 일관성을 가진 형상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뿐만 아니라 최종적이고 유일한 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답을 긍정한다 는 점에서도 흡사하다. 뿐만 아니라 타자를 배려하여 대상이 최대한 총체적인 모습으로 드러 나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이러한 점에서 연주와 연주가 갖는 고유한 문제들은 역 사 쓰기의 여러 문제들을 재고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바그너에 관한 숱한 문헌은 서로 갈등하는 해석들로 가득 차 있다. 갖가지 상이한 해석 들은 다양한 정도로 바그너의 작품을 해명해준다. 그 논쟁의 소용돌이 가운데 이 글은 좀 더 기본적인 차원에서 바그너와 그의 음악에 적합하게 반응하는 법을 모색한다. 먼저 철학자에 게 필요 불가결한 존재로서 처음으로 바그너와 치열한 전면전을 벌인 니체로 거슬러 올라가 어떻게 해서 바그너는 ‘하나의 경우’가 되었는지 비판적으로 되짚어본다. 그로부터 오늘날까 지 바그너는 줄곧 철학과 음악의 관계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해석학적 초점이 되어 왔다. 바 그너를 둘러싼 논쟁의 이런 역사적 배경하에 아도르노의 바그너 비판과 평가를 점검한 다음, 때때로 엿보이는 그의 도식적 해석에 깃들어 있는 함정에 걸려들지 않고서 아도르노의 균열 과 모순이 어떻게 작품을 의미심장하게 만드는지 찾고자 한다. 여기서 음악과 철학의 쟁점에 대한 유익한 가르침을 담은 달하우스의 바그너 해석을 예시한다. 이로써 바그너 안에서 철학 과 음악의 얽히고설킴으로 말미암은 모순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지 보이고자 한다. 특히 아도르노의 바그너 해석의 문제와 시의성을 논함으로써 그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안익태가 미국, 신시내티 음악원으로 유학가는 과정과 신시내티에서 필라델피 아로 전학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미국 국립자료보관서(NARA)에서 새롭게 발견된 안익태의 입국 서류와 미 노동부 이민국의 서류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안익태의 초기 미국 생활을 비교적 자세하게 재구성할 수 있게 한다. 이 자료들에 의하면 안익태가 신시내티 음악원에서 수업료 면제를 받으며 공부했으나 음악원의 운영 주체가 바뀌면서 안익태에 대한 경제적 지 원이 사라졌고 미국 이민국은 안익태가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추방 절차를 개 시한다. 안익태는 필라델피아의 템플대학의 음대로 전학가면서 추방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 민국 조사로 압박을 받으면서도 안익태는 신시내티에서 멀지 않은 작은 도시 핀들레이의 교 회 초청으로 연주활동을 하면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다. 또한 이번 연구는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안익태의 커티스 음악원 수학과 유명 지휘자인 프리츠 라이너와의 만남 등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준다. 반면에 입국 서류에 포함된 그의 호적은 논란이 있던 그의 탄생 연도가 1906년임을 보여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