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에서는 코렐리의 Op. 1, No. 4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특이한 종지로부터 출발하여, 선법이 아닌 교회 조가 조성체계의 등장에 앞서 주요한 음조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바넷의 주장에 입각해 코렐리의 Op. 1 전곡을 살펴봄으로써 교회 조라는 이론적 체계가 당시의 음악을 설명하는 데에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가늠해 보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교회 조의 존재가 각 조성의 주요 화음들이 나타나는(주로 종지가 이루어지는 지점들) 느슨한 배경이 될 수 있음은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교회 조의 느슨한 틀로는 세밀하게 설명되지 않는 특이점들도 있었는데 몇몇 장조의 경우 단3도 아래의 단조화음이 종지점으로 자주 등장했으며, 가온화음의 경우 단화음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자리에 장화음이, 장화음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자리에 단화음이 등장하는 특이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코렐리의 Op. 1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았을 때 바넷의 주장이 모든 사례들을 설명하기는 어려운 맹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논의가 조성의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작곡가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소리의 울림을 만들어 나갔는지에 대해 거리를 두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이해의 틀이 될 수 있었다.
본 논문은 17세기 후반기 로마에서 가장 영향력 강한 음악후원자 중 한 사람이었던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의 음악후원에 내재했던 정치적 수단의 측면을 조명한다. 스웨덴의 왕좌에서 내려와 가톨릭으로 개종한, 하지만 늘 정치적 야심가였던 여왕은 로마에 입성해 아카데미를 서둘러 열고 그 아카데미의 ‘주인장’으로서 정치적 공간의 중심에 섰다. 그렇게 군주로서의 권위 및 지위를 유지하고 정당화했으며,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는데 음악을 동원했다. 따라서 여왕의 후원에 힘입은 작품들 곳곳에서는 콜론나와 카리시미의 《선지자 다니엘》에서처럼 여왕의 영광, 위대함, 고결한 신앙심 등을 드러내려 애쓴 대본가와 작곡가의 ‘필적들’이 역력하다. 《선지자 다니엘》의 대본가로 선택된 콜론나가 여왕의 퇴위와 로마로의 여정을 도운 스페인의 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오라토리오는 여왕이 스페인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정치적 권위를 되찾겠다는 또 다른 메시지였다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은 1980년대 이후 음악학 분야의 가장 뜨거운 논쟁으로 급부상한 ‘프로그램음악’의 개념 규정에 관한 대표적인 주장들을 조망하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1) 창작에 영향을 준작곡가의 음악외적인 ‘내적 정서’를 작품의 프로그램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 2) 그리고 이 ‘내적 정서’가 반드시 서면으로 작성되고 대외적으로 ‘공개’되어야만 프로그램으로 간주되는가?, 3) 그리고 작품의 프로그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곡가가 당시의 주변상황 때문에 그것을 ‘공개적으로 제시’하지 않거나, 4) 혹은 작곡가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침묵’한 음악외적 요소(즉 프로그램)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등을 비판적으로 논의하였다.
본고는 프란츠 리스트(1811-1886)의 즉흥연주에 대한 사고를 탐구한다. 1820-1850년대에 걸쳐 리스트는 서유럽 비르투오소 즉흥연주자로 그의 명성을 떨쳤고, 동시에 그의 헝가리-집시 즉흥연주에 대한 이해를 확충하며 그의 저서와 작곡에 반영하기도 하였다. 기존의 연구가 서유럽과 헝가리-집시라는 양대문화에 기인해서 리스트와 즉흥연주의 관계를 조명했다면, 본 논문은 그 두 문화의 융합과 연계에 초점을 맞춘다. 필자는 다음 네 가지에 특히 초점을 맞춘다. 첫째, 1820년대 즉흥연주에 대한 리스트의 문화융합적 사고에 주목한다. 둘째, 1830-1840년대의 즉흥연주에 대한 비판과 리스트의 해결책을 살펴본다. 셋째, 1840-1850년대의 즉흥연주 쇠퇴와 역으로 부상하는 리스트의 헝가리-집시 즉흥연주에 대한 탐구에 집중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흐름을 바탕으로 리스트에게 즉흥연주는 작곡과 연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또한 서유럽과 헝가리-집시의 경계를 넘나드는 중요한 음악적 매개체였음을 이해한다. 이상의 네 가지에 주목하면서 필자는 리스트의 실용적이면서도 이성적인 대응, 평가절하적인 즉흥연주에 대한 진지한 탐구, 혁신적인 문화융합적 사고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본 논문은 쇼스타코비치의 《새로운 바빌론》에 나타난 그의 음악 특징들을 연구하고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쇼스타코비치를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새로운 바빌론》은 그의 첫 영화음악 작품이자 20세기 초 러시아 무성영화음악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모델이 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 영화관에서 쌓은 피아노 연주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음악 작곡에 본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쇼스타코비치는 영화와 음악의 관계를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이 영화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와 기술을 채용한다. 음악의 지속성, 대조의 원칙, 음악적 몽타주와 인용 기법, 그로테스크한 오케스트라의 연출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단순히 삽입되거나 반주되는 영화음악에서 벗어났다. 특히 이 작품에는 그가 다른 장르에서 보여준 춤곡의 사용, 패러디 및 풍자, 오케스트라 음악의 내러티브 성격 등 초기 음악 특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쇼스타코비치 영화음악의 탁월한 극적 연출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