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이상근 작품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텍스트 분석의 관점에서 벗어나 이상근의 창작과 그의 음악 활동에 영향을 준 사회문화적 배경 연구에 집중하였다. 이상근은 창작뿐 아니라 교육 과 저술, 비평, 평론, 음악 해설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펼쳤다. 그가 거점으로 삼았던 진주, 마산 그리고 부산의 지역문화와 음악 교사와 교수로서의 사회적 위치와 활동,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인적 네트워크는 그의 작곡과 연주 활동뿐 아니라 음악교육과 교과서 저술, 향신회 같은 음악 단 체 결성과 후원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예술가들과의 교류와 사회문화적 배경은 그의 음악창작 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는 루드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음악사 문제를 논의로 삼고, 그 현상을 기억이론의 맥락에서 논의하였다. 빈악파 그리고 빈 고전주의의 구성원으로 조명 받는 베토벤은 사회적으로 음악적으로 분분한 이견을 초래함에도 여전히 기존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이것을 문화인류학자 알라이다 아스만(Aleida Assmann)의 기억이론을 바탕으로 살펴보고, 동시에 사회적, 음악적 관점에서 그 해석을 뒷받침하고자 하였다. 베토벤 음악은 ‘빈’이라는 특별한 장소의 문화적 기억으로 전승되었고, 빈 귀족사회의 후원과 하이든(Franz Joseph Haydn),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의 음악 행보가 베토벤을 더욱 18세기 고전과 연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아가 음악사 서술에서 아스만이 주장한 기능기억과 저장기억의 상보작용이 음악사 서술의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음을 논의하였다.
본 논문은 쇼스타코비치의 《새로운 바빌론》에 나타난 그의 음악 특징들을 연구하고 영화음악 작곡가로서의 쇼스타코비치를 재조명하고자 하였다. 《새로운 바빌론》은 그의 첫 영화음악 작품이자 20세기 초 러시아 무성영화음악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모델이 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 영화관에서 쌓은 피아노 연주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음악 작곡에 본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쇼스타코비치는 영화와 음악의 관계를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이 영화에서 독자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와 기술을 채용한다. 음악의 지속성, 대조의 원칙, 음악적 몽타주와 인용 기법, 그로테스크한 오케스트라의 연출 등 다양한 기법을 통해 단순히 삽입되거나 반주되는 영화음악에서 벗어났다. 특히 이 작품에는 그가 다른 장르에서 보여준 춤곡의 사용, 패러디 및 풍자, 오케스트라 음악의 내러티브 성격 등 초기 음악 특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쇼스타코비치 영화음악의 탁월한 극적 연출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논문은 공감각적 청취의 의미를 살펴보고 노노의 《프로메테우스》를 중심으로 20세 기 후반 음악의 공감각 요소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공감각적 청취는 총체적인 감각기관을 자 극하는 소리의 청각적 수용을 의미한다. ‘청취의 비극’이라는 부제를 단 《프로메테우스》에 서 노노는 움직이는 소리인 ‘공간음향’을 실현시키고자 노력했으며, 이것을 귀를 통한 공감각 적 지각으로 이루고자 했다. 《프로메테우스》에서 공감각적 청취는 성부의 폴리포니 기법, 라이브 전자음악으로 변형된 소리, 음향의 지속, 극단적인 여린 다이내믹 그리고 스피커와 연주자들의 배치 같은 요소들로 인해 야기된다. 20세기 음악청취를 위한 작품인 《프로메테 우스》를 통해 노노는 소리의 움직임을 이루어 냈고 새로운 청취의 가능성, 즉 공감각적 청 취를 보여주었다.
본 논문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군의 맥베스 부인≫을 둘러싼 형 식주의 논쟁에서 벗어나 음악사회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이 작품에 녹아있는 당시의 사회상 과 사회성, 그리고 쇼스타코비치의 작곡의도를 연구한다. 오페라 ≪맥베스 부인≫은 스탈린 정권 당시의 정치사회에 던지고 싶었던 쇼스타코비치의 비판과 메시지를 오페라에 담고 있 다. 무엇보다 레스코프의 서민적, 이야기적 성격의 글에서 그 당시 민중의 삶을 파악할 수 있 었으며, 쇼스타코비치의 시대 또한 그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많은 요소들에서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한다. 이러한 민중들의 삶을 바탕으로 작곡가는 카테리나의 인물을 통 해 당시 여성에 대한 가치관과 정치적, 사회적 배경의 내막들을 조소, 풍자하면서 작곡가 특 유의 음악적 기법을 가미해 그로테스크한 오페라를 완성시켰다. 그의 음악과 오페라의 내용 이 당시 러시아 대중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오페라가 지닌 사회성이 청중 들에게 수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18세기부터 미학적 논의의 대상으로 떠올랐던 유년모티브가 20세기 후반 피아 노 작품 헬무트 락헨만의 ≪어린이 유희≫에서는 어떠한 관점에서 해석되는지 연구한다. 20 세기 후반 어린이는 기존 세기와 달리 사회적 정치적 관점에서 해석되며, 특히 70년대 이후 부터 청소년문학 및 청소년 음악의 붐, 68혁명으로 인한 내면성의 미학, 신주관주의 등으로 유년모티브가 확산된다. 락헨만의 사회비판적 의식은 기존의 음악적 관습과 전통을 거부하 고 새로운 청취습관과 음향을 중요시 여기고 있으며, 이러한 그의 음악관은 ≪어린이 유희≫ 속의 유년모티브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유년세계의 모습들이 다양한 음향과 잔향을 통 해 묘사되고 있으며, 동시에 락헨만은 그 유년의 모습들을 피아노가 생산할 수 있는 다양한 소리들로 표현하고 있다.
≪모자이크 모음곡≫은 이상근이 1960년대 초 미국연수 이후 작곡한 것으로 서양현대음악 기법 의 본격적인 시도들과 함께 12음기법의 체화를 위한 도전으로 시작된 작품이다. 그의 자평에서 출 발한 본 논고는 이상근의 12음기법 사용과 작품의 특징을 ‘양식의 혼합’이라는 맥락에서 설명한다. ≪모자이크 모음곡≫에서 나타나는 양식의 혼합은 12음기법과 선율에 내재된 한국 전통 음악의 요 소 그리고 바로크 양식의 혼합으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12음기법의 수용에서 나타나는 상대적으 로 자유로운 기법의 사용, 음렬에서 발견되는 이상근 특유의 음정작업과 화성 유형들 또한 이 작품 에 깊게 배어 있는 이상근식 음악 양식의 혼합으로 풀이하였으며, 동시에 서양의 새로운 기법을 독 자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려 했던 노력의 산물로 평가하고 이를 이상근의 음악에 담겨 있는 한국음악 의 현대성으로 해석하였다.
본 논문은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Niklas Luhmann)의 체계이론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그 이론을 음악에 적용한 페터 푹스(Peter Fuchs)의 이론을 바탕으로 음악에 체계이론을 어떻 게 적용할 수 있는지 또한 체계이론에서 파악한 음악의 의미와 그 사회학적 해석은 무엇인지 에 대해 논의한다. 푹스는 음악의 의미를 분명, 한슬릭의 미학적 사고와 유사하게, 음악의 자 기생산적 체계에서 찾고 있다. 푹스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자기지시적인 음악은 구체적인 의 미, 즉 타자지시를 가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 사회체계에 존재할 때 음악을 둘 러싼 다양한 의미 부여와 해석들이 생겨나는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 그 의미들은 체계이론 에서 음악의 사회적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고, 이러한 현상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체계이론의 음악학 적용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었다.
This study explores the curial politics of culture and music in the early German Democratic Republic as well as the conflicts between politics and music triggered by the opera Lukullus. Die Verurteilung des Lukullus of Paul Dessau and Bertolt Brecht became an issue, and its musical, aesthetical, and political aspects were debated in East Germany. Dessau’s music was considered as formalistic even prior to its première and endured cultural-political attacks from German officials. The formalist music was regarded as antithesis of Social realist music in the Soviet block, because formalism did not include classical and traditional musical elements and popularity. Lukullus-debate exemplified the unavoidable relationship between cultural-political context in the East German and its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