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5년초연된 리스트의 오라토리오 《성 엘리사벳의 전설》은 독일 튀링겐 아이제나흐 근교의 바르트부르크 성에 그려진 슈빈트의 일련의 프레스코 벽화로부터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 이 프레스코들은 여섯 각진 큰 그림들과 일곱 둥근 작은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다. 오 라토리오의 여섯 곡들은 각각 여섯 그림들과 관련된다.
이 오라토리오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 빈번하게 연주되었다. 이러한 인기의 주요 이유 하 나는 이 오라토리오를 이루는 독일 및 헝가리적인 특질들이다. 또 하나의 차원인 편만한 가 톨릭교와 더불어 이들은 리스트 노년의 바이마르, 부다페스트, 로마를 매년 순회하며 삶을 영위하는 소위 “세 갈래 삶”과 같은 형태를 이룬다. 독일과 헝가리의 사제들이 함께 라틴 성 가를 부르는 오라토리오의 마지막 장면은 바로 이러한 삶을 예표(豫表)한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멘델스존의 현악4중주 중 장조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V/iii의 새로운 기능에 대하여 밝혀보았다. 실제로 V/iii는 멘델스존의 작품에서 기존의 기능보다 확대된 기능으로 사용되며, 이러한 기능은 멘델스존의 낭만적 화성 혹은 조성구조를 살펴보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품의 분석을 통하여 얻어지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V/iii는 으뜸화음을 반음계적으로 후(後) 장식한다. 둘째, V/iii는 재현부 앞에서 구조적 딸림화음을 대신함으로 써 전체 작품의 구조에 영향을 주며 결과적으로 I-V-I의 틀로부터 벗어나는 구조를 보인다.
20세기는 조성의 해체와 함께 화성보다는 대위적 사고가 우위를 갖게 된 시대이다. 본 논 문은 20세기 작곡가들이 대위적 짜임새를 형성하기 위해 구사하고 있는 다양한 방식들 가운 데 대표적 한 가지 예인 비조성 푸가를 통해 현대 비조성음악에서의 대위적 텍스처를 고찰한 다. 이를 위해 ‘대위’의 음악사적 개념과 대위적 음악의 특징들을 살펴보고, 20세기 작품에서 의 대위적 양상을 수직적 음정의 처리에 대한 ‘공통관습의 부재’라는 측면에서 논의한다. 이 어서 ‘푸가’의 음악사적 개념과 조적 관계성이 부재하는 현대 비조성푸가의 특징과 한계점들 을 고찰함으로써 단순 모방기법과 구별되는 푸가만의 특징이 비조성푸가에 존재하는가에 대 한 비판적 논의를 전개한다. 아울러 20세기 비조성푸가의 유형들을 세 가지로 분류해, 전통 적 푸가의 외형적 특성을 유지하나 조적 관계성을 실제로 갖지 않는 푸가로부터 현대적으로 새롭게 재해석된 실험적 푸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 예를 통해, 비조성푸가의 한계점과 이에 대한 작곡가들의 대안모색 방식들을 살펴본다.
이 글은 무엇보다 역사적 맥락 속에 케이지를 놓고 보려는 시도이다. 그 밑바탕에 놓인 역 사적 관심사는 “삼중의 변증법적 대립”(칼리니스쿠 1994, xviii)의 전개로 서술되는 미적 모 더니티의 서사와 케이지의 관계이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역사적 아방가르드”(뷔르거)와 네 오아방가르드 사이의 이행기, 즉 케이지의 《4분 33초》(1952)에서 분수령을 이루는 시기이 다. 이 무렵 케이지의 작업에서 우리는 자기부정을 함축하는 아방가르드의 딜레마를 해소할 또 다른 논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운명(殞命)을 운명(運命)으로 타고난 아방가 르드를 살리는 법을 케이지의 말⋅글⋅음악 가운데서 찾으려는 것이 이 글의 목표이다. 이 는 케이지의 후기 작업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우연성 이전 시기’에 대한 재평가와 연결될 뿐만 아니라 그의 텍스트 실천과 음악 실천 사이의 상호영향까지 확인할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실패가 자신의예술적 성공에 놓여 있는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 는가? 문제는 자율성이다. 그것은 철회되어야 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인가, 계속 유지되고 존중받아야 할 역사적 성취인가? 이것 아니면 저것인가? 양자택일은 어떤 식으로든 부정성 에 헌신했으나 정작 그 자신이 기존의 긍정적 질서에 기생하거나 결탁하게 되는 일을 피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예술의 자율성은 사회와 ‘매개’된 상대적 자율성이기 때문이다. 둘 째, 미적 모더니티 자체에 내재한 모순으로 인해 자율성과 타율성은 끊임없이 대립하면서 자 신과 정반대되는 것으로 끊임없이 전도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변증법적 시각에서 볼 때 아방가르드는 예술의 자율성에 반작용하는 한 모더니즘의 일부이기도 하고 또 예술제도를 문제시하는 한 모더니즘과의 단절이기도 하다. 양자택일의 진퇴양난에 빠지지 않는 길은 바 로 이 양면성의 논리를 깨닫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